
- 8개국 한달간 ‘민주주의 토론’
이념 떠나 환경·난민문제 논의
모태는 스웨덴 ‘알메달렌 주간’
총리도 재킷 벗고 현장서 연설
4000명 청중 1m 거리서 소통
노르웨이 ‘아렌달’도 인파몰려
덴마크·핀란드 등 8700개 행사
작년 이슈는 디지털화·性평등
“듣고 얘기하며 권위주의 대응”

정치인부터 일반 시민, 청소년까지 한데 모여 진짜배기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논한다. 북유럽 및 발트해 연안 8개국이 각기 개최하는 정치 축제 기간만 모두 더해 꼬박 한 달에 이른다. 건강, 교육, 지역발전부터 성평등, 디지털화, 난민 문제까지 그야말로 정치에서 다루는 모든 정책이 총망라된다. 각국에서 토론한 주제들은 공유된다. 일상의 정치는 곧 국제사회를 변화시키는 한 걸음이 된다.
17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노르웨이 남부 해안마을 아렌달은 지난 13일부터 노르웨이 전역에서 몰려든 정치인과 시민 등 수천 명의 인파로 들썩이고 있다. 18일까지 열리는 정치주간 ‘아렌달수카’ 때문이다. 아렌달수카 기간 모여든 이들은 플라스틱 문제부터 유럽의 미래까지 다양한 의제를 논의한다. 아렌달수카를 비롯한 북유럽 정치 축제의 모태는 스웨덴 ‘알메달스베칸(알메달렌 주간)’이다.지난 7월 5일 스웨덴 고틀란드 비스뷔의 공원에서 열린 올해 알메달렌 주간 행사에서 연설하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웠다.
“스웨덴은 반(反)민주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익을 보도록 절대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다양한 국적의 청중 4100여 명과 고작 1m 남짓한 간격이었다. 재킷도 벗어던진 채 민주주의에 대해 논하는 뢰벤 총리의 모습에서 권위주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뢰벤 총리와 알메달렌 주간에 모인 청중들의 모습은 총선 투표율이 매번 80% 이상을 기록하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알메달렌 주간은 1968년 7월 올로프 팔메 당시 교육부 장관이 트럭 위에서 한 즉석연설에서 유래했다. 마을 주민들부터 휴가를 즐기던 관광객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현직 장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듬해 그는 42세에 당 대표 겸 최연소 총리가 됐다. 그리고 그해에도 같은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났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그의 방식에 정당들은 환호했고 1982년 알메달렌 주간이 공식 출범했다.
지난 7월 1일에서 8일까지 열린 올해 알메달렌 주간은 9월 총선을 앞둬 더 화제를 모았다. 참석기관만 2000여 곳, 곳곳에서 진행된 행사는 4311개에 달했다. 가장 큰 특징은 이때 좌우, 중도 등 진영을 가리지 않고 진짜 민주주의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매일 저녁 진행되는 정당별 연설행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민주노동당 대표로 참석한 뢰벤 총리는 물론, 울프 크리스테르손 중도당 대표, 요나스 쇠스테드 좌파당 대표, 얀 뵈르크룬드 자유당 대표 등 모든 정당 대표들이 시민들과 직접 소통했다. 연설행사 순서는 정당별 의석수를 따지지 않고 추첨을 통해 결정됐다.
스웨덴 국민의 뜨거운 반응에 이웃 나라에서도 민주주의 축제를 적극 차용했다. 지난해 시작한 리투아니아를 포함해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노르웨이 등 8개국이 비슷한 민주주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축제 기간 중 열리는 공식행사만 8700여 개, 각국 정당 및 구성원들의 참가율은 90%에 달한다. 이들 국가는 이제 ‘민주주의 축제(Democracy Festivals)’라는 이름의 단일 플랫폼을 형성했다. 북유럽각료이사회(NCM)에서 지원하는 운영자금을 바탕으로 그해 서로 가장 뜨겁게 나눴던 의제들을 분석, 공유한다. 지난해 핀란드에서 외교정책 및 교육, 성평등이 주요 의제였다면, 덴마크는 디지털화와 가짜뉴스, 난민 문제를, 노르웨이는 혁신 등이 뜨겁게 논의됐다. 각기 다른 이슈에 중점을 둔 것 같지만 8개국 전체 의제를 모아보니 현재 북유럽은 건강관리, 디지털화, 국가발전, 성평등,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원격으로 가능한 시대, 왜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는 민주주의 축제가 필요한 걸까. 북유럽 정치전문가들은 “현재 전 세계의 의회 민주주의는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늘면서 투표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제정치의 불확실성, 복잡성, 예측 불가능성은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한 ‘스트롱맨’이나 포퓰리즘 정부를 양산한다. 대중들은 결국 일방적 이념에 길든다. 이를 경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민주주의 축제다. 전문가들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권위주의, 민족주의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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