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의 한 원로가 선생의 성추문 소식을 들은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의 시 ‘그 꽃’을 빗댄 말씀이지요. 이 원로는 선생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수긍하는 듯 싶더군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언론이 고 선생을 이제 그만 놔뒀으면 좋겠어요.”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한 시인도 같은 말씀을 줬습니다. “선생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생애의 명예가 실추될 만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의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중견 시인은 “과거엔 성재롱쯤으로 치부됐던 것이 요즘은 성희롱 아니냐.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징죄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이들 중견-원로들의 말씀에서 공통으로 묻어나는 정조가 있었습니다. 먼저 태어난 탓에 세상의 고통을 다 겪어낸 세대가 뒤에 태어난 세대들로부터 공격받는 것에 대한 슬픔.
이분들도 인정하듯이 선생의 기행, 특히 성과 관련한 추문은 문학계에서 오랫동안 떠돌았습니다. 이문열 작가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이 그 추문에 관한 것이었지요. 1990년대에 나온 그 소설은, 당시 위세를 떨쳤던 민족문학 진영의 항의로 이 작가의 소설집에서 삭제됐습니다. 이 작가는 그 몇 해 뒤에 발표한 작품 ‘선택’으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의 거센 공격을 받았지요. 요즘 고 선생께서 페미니즘 진영의 비난에 직면한 것을 보며 세상사의 묘함을 느낍니다. 문학계 좌우 양대 진영의 거장들이 결과적으로 여성주의에 반한다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됐으니까요.
새삼 씁쓸하게 떠오르는 것은, 1990년대 말에 선생을 인터뷰했던 경험입니다. 어느 문예지의 부탁으로 선생을 만났는데, 그때 문청이었던 여성 후배 한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선생은 인터뷰 중에 옆자리에 앉은 그 후배의 손을 어루만졌습니다. 저는 선생께 “자리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고, 선생은 언짢은 표정이면서도 그 후배에게 맞은편 자리로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선생에 관해 떠도는 추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천의무봉의 작품을 쏟아내는 시인의 일탈적 기행쯤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성에 관한 무용담을 키들거리며 즐기는 남성 중의 하나였던 탓일 겁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인터뷰 이후에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난 선생께서 참 무구한 시인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타산을 하지 않는, 그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기를 소중히 감싸 안는 시인이었습니다.
그런 시인께서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두 시인과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것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두 시인의 평소 행보가 미투 운동을 대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문학계 내부에 이견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생께서 여론 재판이 균형 감각을 찾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법에 호소한 것은 치신사납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보여온 대인 풍모와 아주 다르니까요.
선생의 사안은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니, 그 죄의 여부와 경중에 대해서 누가 함부로 재단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진보를 위해 온 생애를 밀고 온 시인께서 모듬살이의 가치가 진화하는 데 기여하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일이라도 남성으로서, 문학 권력으로서 여성들에게, 후배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자성해야 하겠지요. 선생께서 잘못한 일 이상으로 비난을 받아서도 안 되겠으나, 다수가 증언하는 일까지도 부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법정에서 불리할까 봐 자성할 일에도 계속 침묵한다면, ‘고은(高銀)’이 아닌 ‘저은(低銀)’의 고집일 뿐입니다.
기억하시지요? 선생을 등단시킨 스승인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이 한때 ‘말당(末堂)’으로 비하된 적이 있음을. 선생이 이끌던 문학 진영에서 미당의 친일과 독재 권력 추수를 강력히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미당은 에세이 ‘창피한 이야기들’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미당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엄존하지만, 그 문학만큼은 겨레의 자산으로 귀히 여겨야 한다는 주장도 꽤 힘을 얻고 있습니다.
고 선생의 생애와 문학이 앞으로 겨레의 자산으로 남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남았으면 하는 쪽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께서 ‘먼저 태어난 자의 슬픔’을 생애에 진 채로 뒤에 태어난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것입니다. 그게 큰시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의 일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저와 같은 남성들은 성추문의 오욕을 함께 지는 자세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역사의 수레가 앞으로 가겠지요. 여기서 자신을 추스르지 않으면, 욕망의 음습한 추문 속에서 희희낙락하는 속물로 계속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