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하는데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돌멘(Dolmen)으로 통칭되는 고인돌은 이집트의 피라미드(Pyramid), 영국의 스톤헨지(Stonehenge), 프랑스 카르나크의 열석(列石·여러 개의 큰 돌을 줄지어 세운 것) 등과 같은 거석기념물(巨石紀念物)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대체로 기원전 1200∼200년 무렵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들었던 무덤이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간석기 등이 주로 출토된다.
국내의 고인돌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돼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지다가 철기 시대에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 강화군, 전북 고창군, 전남 화순군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에는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사적 제137호·사진)은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전체 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으로 돼 있다. 원래 네 개의 굄돌 위에 덮개돌이 올려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두 개의 굄돌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덮개돌의 무게는 약 80t에 달하며 고인돌 축조에 800명 이상이 동원됐을 것으로 인천시 역사자료관은 추정하고 있다.
이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인근 삼거리에 있는 고인돌에서 무문토기조각과 간돌검(마제석검), 돌가락바퀴(방추차)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미뤄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덮개돌과 받침돌이 온전히 보존돼 있으며, 사체를 넣고 막았던 판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형태가 웅장해 제단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외에도 강화군에는 15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 중 강화 부근리 고인돌 등 보존 상태가 좋은 70기의 고인돌은 지난 2000년 12월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된 곳이고,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가 중심 지역이다. 고인돌을 통해 선사시대의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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