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대 인문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던 중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권이 보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및 정책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대 인문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던 중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권이 보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및 정책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사회정의’라는 명분 내걸고
부자들에게 세금 쥐어 짜서
가난한 사람에 퍼주는 식의
문재인 정부 정책과 싸워야

‘빨갱이’‘종북’ 떠들어봐야
現 사회엔 더 이상 안 먹혀
한국당 비롯한 보수 정치권
뭘 해야할지 모르는것 같다

‘불평등’이라면 얼어붙는데
보수에 대한 자신감 가지고
‘정당한 노력에 보상받는 것’
국민들 설득시킬 필요 있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상대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입니다. 보수가 더 이상 ‘빨갱이’ ‘종북’ 떠들어봐야 안 먹힙니다. ‘사회 정의’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명분 삼아 부자에게 세금 걷어 가난한 사람에게 퍼주는 식의 문재인 정부의 사회민주주의에 정책과 비전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영국사를 전공하고 최근에는 영국 보수당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저술에 열중하고 있는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권이 아직도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획일적 평등과 국가의 비대화 및 개입에 반대하는 보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불평등이 나쁜 게 아니라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한 10년은 갈 줄 알았는데, 너무 빨리 무너질까봐 걱정”이라며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대 인문대학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19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보수 정치권에 많은 고언을 했는데, 지적에 잘 따랐다고 봅니까.

“거의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이제는 했던 얘기를 되풀이하는 게 달갑지 않아요.”

―실망이 컸던 모양입니다. 한국당에 특히 부족했던 점은 뭔가요.

“보수니, 자유민주주의니 말은 많지만 과연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국회의원이 몇이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보수는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갖는 데서 정체성을 찾아왔다고 봐요. 이제는 그것 갖고는 안 됩니다. 계속 ‘빨갱이’ ‘종북’ 얘기만 떠들어서는 먹히지 않아요. 안보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보수의 외연이 넓어져야 해요.”

한국당이 새로운 보수의 모습을 못 보여줬다는 진단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카운터파트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상대는 사회민주주의입니다. 우리 사회 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과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 간에 한판 싸움이 벌어져야 합니다. 요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하고 있는 게 사회민주주의 정책입니다. 세금을 더 많이 걷어 돈을 푸는 겁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며 국가가 나서서 부를 재분배하는 거죠. 이건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적한 국가주의 방식입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식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걸 거부합니다. 모든 것은 개인이나 사회 차원에서 해낼 수 있다고 믿고,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은 나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한국당 의원들은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정부에 대항하는 정책이 안 나오는 겁니다.”

―한국당이 보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나 이념을 제대로 못 세웠다는 얘긴데요.

“지금 민주당 정책을 보세요. 최저임금을 올리고, 돈 많은 사람을 쥐어짜서 세금 더 걷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풀고 있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이런 정책에 대응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접근이 갖는 악폐를 지적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금 올려서 퍼주는 게 나쁘다는 것을 국민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한국당은 이걸 제대로 못 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은 국민에게서 뭔가를 빼앗으면 선거에서 반드시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있었던 게 2011년인데, 우리 국민의 의식이 그때와 비교해도 확연히 향상됐다고 봐요. ‘세금은 함부로 걷는 게 아니다’, 또 ‘세금으로 국가가 생색내듯 퍼주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됐어요. 대학생들과 얘기해 봐도 그렇고,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그런 식의 접근은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게 보수 정당의 역할이고, 민주당과 차별성을 갖는 길입니다. 그런데 한국당 사람들은 자기들부터 이에 대한 확신이 없고, 우리 국민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줬던 걸 빼앗더라도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설득할 수 있습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그랬어요. 그가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영국은 지금 우리보다 더한 퍼주기식 사회였어요. 노조로부터 기득권을 빼앗고, 실업수당을 삭감하면서 욕을 많이 먹었지만 대처는 끊임없이 설득했어요. ‘이렇게 해야 오히려 당신들에게 이롭다’면서. 이게 정치인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와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고 지적했는데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건가요.

“그렇게 봅니다. 그들은 그런 방식이 먹혀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닙니다. 아무리 실업자가 많아져도 가계를 책임지는 사람의 90%는 세금을 내고 살아요. 대학생들도 학생 때 세금으로 이것저것 베풀어 주면 좋아할지 몰라도, 취직해서 월급에서 세금 나가는 걸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을 겁니다. 한국당이 이런 점에서 보수의 정책과 비전을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보수 정당은 불평등을 옹호하는 정당입니다. ‘불평등’이라고 표현하면 나쁜 것처럼 생각하지만, 불평등을 달리 얘기하면 ‘내가 남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가 됩니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능력도 없고 하니 국가가 먹고살게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10% 정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내가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나와 내 자식이 더 나은 기회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한국당은 이걸 캐치해야 합니다. 불평등이라는 말만 나오면 얼어붙어선 안 돼요.”

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와 보수의 가치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불평등 옹호’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과연 정치인과 정당이 국민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불평등을 옹호한다면 여론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요.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요.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한 사람이 특혜를 받으면 뭐라 하겠지만 정당하게 노력해서 보상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릴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불평등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표현이 거슬릴지 모르지만 불평등은 나쁜 게 아니에요. 영국 보수당이 20세기 100년 중 68년을 집권했는데, 이건 노동계급의 반 정도는 보수당을 찍었다는 얘깁니다. 왜 찍었을까요. 보수당의 정책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노동자라고 다 같이 평등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내 자식은 남의 자식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물론 저 같은 학자는 이렇게 말하지만, 정치인은 국민이 오해하지 않게 잘 포장해 말해야겠죠.”

―지금의 한국당 구성원들은 그걸 실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시나요.

“정치인도 실력이 있어야 해요. 국회의원들 가운데 정치인 옆에서 기웃거리다 공천받아서 들어온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정치꾼이죠. 너무 답답하다 보니, 생각 같아선 시험이라도 봐서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보수주의의 기본 원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내쫓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야 한다는 건데, 새 인물을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영국의 사례를 보면 대학에서부터 인재를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영국은 케임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 등에 ‘컨서버티브 어소시에이션(Conservative Association)’과 같은 보수 학생 조직이 있어요. 1920년대부터 만들어졌는데, 거기서 매주 모여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는 겁니다. 대처나 에드워드 히스 등이 모두 이런 보수 학생 조직 회장 출신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좌파만 이런 식으로 인재를 키우는 끈이 있어요. 좌파는 아직도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에서 새 인물이 크고 있는데, 우파는 없죠.”

―과감한 인적 쇄신 없이는 한국당이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참패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어떤 새로운 인재를 끌어들여야 합니까.

“한국당은 지금까지 특혜받고 낙하산 타고 내려와 출세한 사람들이 모인 당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요. 각 분야에 ‘개천에서 난 용’, 다시 말해 자기 노력과 능력으로 역경을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간 사람들이 있어요. 이제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개천에서 용 나는 프로젝트’ 같은 걸 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국민도 한국당을 보면서 ‘저 당이 나를 위한 당이구나’ 하지 않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 한 달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새로운 걸 해 보려고 하는데, 주제는 잘 잡은 것 같아요. 비대해지는 국가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와 의지, 창의성 등을 강조하는 거죠. 문제는 김병준이 아니라 한국당 구성원들이에요. ‘네가 뭘 하겠어’라는 식으로 꼬나보고 있는 것 아닌가요. 김 위원장은 밖에서 굴러온 돌인데, 한국당 내에서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김 위원장도 개인적 욕심은 버리고, 한국당과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다 (당이) 다시 부르면 나오면 되죠.”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빠지는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그대로입니다. 김병준 체제에서도 인적 쇄신이 안 이뤄져서 그렇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가치 정립이 먼저냐, 인적 쇄신이 먼저냐의 문제인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치 정립이 먼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금방 나아질 상황은 아니잖아요. 한국당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는데 일찍 올라와 봐야 뭐하겠어요. 제대로 살아서 올라오는 게 중요하죠. 정당은 비전과 이념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선 이걸 정리해서 맞지 않는 사람은 나가고, 못 따라오고 실력 없는 사람은 쫓아내야 합니다. 한국당엔 지금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동안 보수 정당은 북한의 위협만 강조했을 뿐 국민에게 뭔가 포지티브한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면서 지지를 호소한 적이 없어요. 이런 걸 새로 만들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예요.”

―여전히 한국당은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내부 정리가 안 되는 모습입니다.

“어떤 역사적 인물도 다 공과가 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인데,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다 인정하고 가야죠.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인터넷에 댓글 다는 걸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으로 보는 것 같은데, 신은 아니죠. 박정희 체제에서 험악한 일 당한 사람이 한두 명인가요. 차라리 ‘쿠데타를 했지만,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 수 있게 했다’고 얘기해야죠. 또 ‘박정희 신화’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 봅니다. 실력과 능력, 그릇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을까요.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은 어떻게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내세웠을까요. 우린 다 속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안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업보입니다. 한국당이 박정희와 박근혜는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교수는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잘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적법하게 뽑은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탄핵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탄핵이 남긴 게 뭔가요. 극과 극으로 나뉘어 갈등만 더 커진 거 아닌가요.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데) 권력 남용이 어느 정권에선 없었나요. 문재인 정부는 권력 남용 안 하고 있나요. 어차피 1년 더 있다가 대통령선거 치렀다 해도 문 대통령이 됐을 겁니다. 그럼 더 정상적인 방법으로 나라가 순조롭게 갔을 겁니다.”

화제를 문재인 정부와 한국 정치 일반으로 옮겼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경기 침체와 일자리 대란으로 출범 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상황을 박 교수가 어떻게 진단하는지 궁금했다.

―최근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건국 100주년 얘기할 때부터 무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문제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죠. 경제도 그래요. 시장을 거슬러서 성공한 정권이 세계 역사상 있었나요. 소위 국가주의적 방식으로 2∼3년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무너지는 건 하루아침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설 때 이 정권은 10년은 갈 거라고 봤는데, 인제 보니 그렇게 못 갈 것 같아요. 이렇게 되는 건 한국당에도, 우리나라 전체에도 안 좋은 일이에요. 한국당이 완전히 무너져서 제대로 새로운 정당이 된 다음 정권을 잡아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해서 한국당이 다시 나선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민주당에서 ‘20년 집권론’이 나오는 것과는 현격한 인식 차였다.

“문재인 정부가 너무 빨리 무너질까봐 걱정입니다. 달리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잘해 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여권에서 정책 기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집권한 지 1년 3개월 지났으니 한번 결산해 보고 잘못된 정책은 바로잡아야죠. 대선 공약도 포기할 건 포기하고, 고칠 건 고쳐야 해요. ‘지지자들에게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는 건 ‘지지자의 대통령’이 할 일이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일은 아녜요. 최근 변하려는 모습이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앞서 ‘태극기 부대’ 얘기를 했는데, 민주당에서는 문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인 소위 ‘문빠’들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보면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830년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본 소회가 나와 있어요. 프랑스 귀족 출신의 토크빌 눈에 우려스럽게 보인 점도 많았지만,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대중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봤어요.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제 왕정이 아닌 민주주의가 시대적 대세라는 거죠. ‘문빠’나 ‘태극기 부대’ 문제는 우리 민주정치 역사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도 경험이에요. 걸음마 배우듯 훈련해야 해요. 다만 촛불 들고, 태극기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는 건 훈련이 아니에요. 자기들끼리 모여 소리 지르고 해소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만나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진정한 민주주의 교육입니다. 초·중·고교에서부터 그런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은 많이 바뀌었는데도 여야 충돌은 갈수록 격화되는 모습입니다. 영국은 연정을 하지 않는데도 의회에서 그런 충돌은 없는 것 같은데요.

“영국은 민주주의 역사도 길고, 내각책임제 국가라 우리와 많이 달라요. 특히 야당에도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이 있어, 내각을 상대로 전문적인 정책 토론을 벌이는 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의회 내에서 헛소리하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국회TV가 있지만, 영국 사람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총리가 하원에 나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프라임 미니스터 퀘스천(PMQs)’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 봅니다.”

―의사당에서 쓰지 못하는 단어도 정해져 있다죠.

“욕설이나 속어처럼 상대를 수준 낮게 비난하는 게 금지돼 있어요. 가령 ‘이디엇(idiot·멍청이)’이라는 단어도 사용 못 합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야당의 ‘그림자 내각’ 장관에게 그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하원의장이 즉각 의사진행을 중단하고 그 말을 속기록에서 삭제하도록 했어요. 또 캐머런 전 총리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죠.”

―그렇게 억지로라도 규율을 정하면 나아질까요.

“나아질 거라고 봐요. 그런 영국 분위기에서 의원들이 몸싸움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국회의원이 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적도 있잖아요. 그런 식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의원 자격을 빼앗아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 = 오남석 차장(정치부)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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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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