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금강 백제보에 담긴 금강물이 27.5㎞ 떨어진 예산군 예당저수지로 가는 도수로(導水路)가 열렸다. 남쪽 농업용수가 차령산맥을 넘어 서북쪽 평야 지대에 공급되는 첫 물꼬가 트인 날이다. 1100억 원이 넘는 공사비에 하루 13만t의 물을 상습 물 부족 지역에 보내는 도수로는 충남으로선 큰 역사지만 흔한 축하 행사 없이 이날 오후 6시 조용히 개통됐다. 4대강 봇물을 끌어다 쓰는 도수로 공사는 ‘4대강 사업에 명분을 주는 사업’이란 이유로 4대강 사업 반대 단체들이 저지했던 사업이다. 현 정부의 보 개방 정책과도 어긋난다.
충남도와 사업 주체인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련 기관이 개통 자료를 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같은 금강 수계인 충남도는 수문을 열지 않은 백제보 물로 해갈에 도움을 받고 있지만, 세종시는 세종보 개방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세종보 개방 이후 금강 수량 감소와 녹조 심화, 건천화에 따른 환경 파괴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충남도나 세종시나 어느 곳도 보 개방 중단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4대강 보 개방에 따른 긍정 효과와 달리 피해 사례가 속출하지만, 보 개방에 반대한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낙동강을 낀 일부 지역의 여당 소속 단체장은 지역 농민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 추가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대승한 이후 중앙정부 정책에 ‘노(NO)’라고 말하는 지방정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 정책이 지방의 이익과 배치되거나 손실을 초래하는 데도 눈치를 보거나 침묵하는 곳이 많다.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시행하면서 2010년 30㏊에 불과했던 태양광발전 시설이 지난해 1431㏊로 47배가량 급증했다. 땅도 모자라 한국농어촌공사는 여의도 면적(290만㎡)의 17배에 달하는 최대 5000만㎡의 태양광발전 시설을 전국 저수지 절반에 해당하는 1640여 곳에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 우후죽순, 마구잡이식으로 건설되면서 환경 파괴와 부동산 투기, 지역민 반발 등 지방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뿐 아니다. 경기 불황에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지방 일자리가 소멸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괜히 나섰다가 밉보여 손해를 볼까 걱정하며 입을 닫거나 중앙정부의 입맛에 맞는 말로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단체장이 적지 않다. 권력이 지나칠 정도로 기울어진 데다 적폐 청산 바람까지 불면서 현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지방의 목소리가 끊겼다. 이런 와중에 여당 소속 정장선 평택시장이 22일 “현재 평택호 수질이 크게 악화해 수면에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되면 수질이 더 나빠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선거 때에는 가능한 것과 완벽한 것을 약속했다 하더라도 현실이 그렇지 않으면 실제적이고 이익이 되는 것을 택하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로서 단체장의 도리다. 야당은 물론 여당 소속 단체장도 중앙정부를 향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때다. 정부의 불안한 질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할 말은 하는 단체장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