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기억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한 분이 있다. 진심일까. “살 때까지 열심히 살면 됐지요. 죽은 다음에까지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오늘도 호출했으니 고인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최초(1962)의 현대 가야금 곡 ‘숲’의 작곡가 황병기 선생 얘기다. 1965년 미국에서, 1974년에는 유럽에서 순회공연도 마쳤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는 말이 있다. 국악인이지만 학력이 늘 따라붙는다. 비슷한 연배의 서울법대 출신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 쟁쟁하다가 늙어서 감옥살이하는 친구들 보면 참….” 하기야 법대로 살기도 쉽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도 수월치는 않다. 황 선생은 이런 말도 남겼다. “이제 죽을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죽으면 되겠지요.” 명인다운 말이다.
그분의 동기동창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나그네 길’로 시작하는 ‘하숙생’(1964)의 가수 최희준(사진) 선생이다. 부음 소식마다 ‘서울법대 출신’이 빠지지 않는다. 두 분의 연보를 살피다가 놀랐다. 생년월일이 단 하루 차이다. 황 선생은 1936년 5월 31일생이고, 최 선생은 같은 해 5월 30일에 태어났다. 그리고 올해 1월 황 선생이, 8월에 최 선생이 귀천(歸天)했다. 시인 천상병의 말대로 ‘이 세상 소풍’을 마친 두 친구는 다시 만나 추억을 공유 중일 것이다. “법철학 시간에 황산덕 교수가 한 말 기억나?” “뭐였더라” “법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법의 목적이다” “아, 그랬었지”.
축제경연 후 그들은 동창들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버트 프루스트의 시 제목)로 걸음을 옮겼다. 최 선생은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황 선생은 가야금 연주에 매진했다. 가는 길이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르다고 친구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2015년에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의 부제가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이었다. 가야금으로, 대중가요로 그들은 미지의 친구를 많이 얻었다. 그들이 진짜 공부한 ‘법’은 ‘세상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이 아니었을까.
최 선생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노래 제목은 ‘길’(1974)이다. 도대체 ‘길’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는가. ‘길다’에서 오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길지 않으면 길이 아닌 것이다. 지금 검색어로 ‘길’을 누르면 ‘빠른 길 찾기’가 뜬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왜 이렇게 조급해졌는가. 그들이 노래한 ‘고엽’에는 ‘삶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아요’라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죽음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 천상의 신고식에서 최 선생은 앙코르곡으로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를 부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벗이여 분명히 말하고자 하네(my friend I’ll say it clear)/내가 확신하는 나의 이야기 말일세(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충실한 삶을 살았고(I’ve lived a life that’s full)/숱한 고비를 겪어 보았네(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And more much more than this)/그걸 내 방식대로 했다는 것이지(I did it my way)/그래 그게 나의 인생이었네(Yes, it was my way).’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하숙생’ 중). 오늘따라 노래 가사가 입에 착착 감긴다. 나더러 꿈속에 산다고 가끔 핀잔주는 아내에게 “인생은?”이라고 가볍게 물었다. 생뚱맞다는 표정이다. “한마디로 말해봐.” 우문에 현답(현실적인 답)이 돌아온다. “어떻게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해?”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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