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력시장엔 왜 중장년·외국인만?

온라인 하루 수백건 구인·구직
“돈 후려치니 조심” 정보 공유
고용악화 탓 건설현장만 전전


한때 ‘경로당’이라는 자조적인 한탄이 나올 정도로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건설 현장에 2030 세대가 모여들고 있다. 요즘 공사판의 ‘젊은 피’들은 새벽 인력시장 대신 네이버 밴드, 카카오스토리 등 SNS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소통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31일에 충남 아산 쪽에서 닥트(건물에 환기구 등을 설치하는 작업) 일 같이 하실 분 찾습니다. 제가 26세라 비슷한 나이의 친구를 구해요. 자리는 제가 미리 구해놨습니다. 연락 주세요.” “25살 2명 배관 일자리 구하고 있습니다. 일을 배운 뒤 계속 이쪽 길에서 먹고살려고 합니다….”

‘전국건설현장 일자리 나눔’ 등의 네이버 밴드에는 하루 최대 400건이 넘는 구인·구직 정보 글이 쉼 없이 올라온다. 회원 수만 3만 명에 달하는 공사현장 관련 모임도 있다. “이 작업장은 돈을 너무 많이 떼먹으니 조심하세요” 같은 댓글을 통해 작업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40대 이상 회원은 찾기 어렵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다녀왔다는 20세 남성 등 대부분이 20∼30대다. 여성 회원도 드물지 않다. ‘비계 발판공(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을 설치·해체하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구인 광고를 올린 이모(38) 씨는 30일 “요즘 새벽 인력시장에는 늙은 사람 아니면 외국인 노동자밖에 없다”며 “여기는 워낙 다들 젊고 정보가 빨라 나이가 45세만 넘어도 특수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일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공사 현장에서 함께 일할 ‘팀’을 꾸리는 사람도 많다. 방학을 맞아 2주짜리 숙식 시공 작업 일을 하고 있는 대학생 이모(25) 씨는 “밴드에서 함께 일할 또래를 찾아 함께 일하면 적응도 금방 하고 외롭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또래들이 아예 ‘작업 팀’을 조직해 마치 하나의 업체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건설업계에 불어닥친 불황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화두다. 한 구인 공고 글 밑에는 “12만 원이라니 너무 후려치는 것 아니냐” “이 돈 받느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 등 작업 처우를 두고 격앙된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전기공 장모(32) 씨는 “최근 현장에서 작업 단가가 너무 낮아졌다는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며 “외국인 노동자도 많아졌고, 경기도 좋지 않다 보니 제대로 돈을 줄 여력이 안 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취직 실패 등의 이유로 공사 현장에 뛰어든 청년들은 전문적인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초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구모(28) 씨는 “대학 졸업 후 구직 활동으로 20대를 통째로 날린 끝에 이곳에 왔는데 아직도 현장에서 폐자재나 모아 버리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며 “어서 일을 배워 기능공이나 작업팀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으로 청년층이 유입되는 데는 경기 침체와 고용시장 악화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청년(15∼29세) 가운데 일용직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청년은 올 5월 기준 25만3000명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만7000명이 늘어난 것으로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4년 이후 최고치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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