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정한 분이 99세라니, 윤동주 시인과 중학 동창이고 김수환 추기경과는 대학 친구였다니. 지난달 29일 오후였지요. 저는 선생의 연세를 고려해서 만남 시간을 줄이려 했습니다. 선생께서 새로 펴낸 책 ‘행복예감’을 잘 읽었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로 갖고 간 차(茶)만 드리고 오려고 했지요. 그런데 특유의 다감한 말투와 소년처럼 무구한 미소의 매혹에 이끌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말았습니다.
이날 선생은 지팡이를 짚지 않은 채 거동했고, 보청기 도움 없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원래 병약한 체질이었다고 했습니다. 동갑 친구였던 고 김태길(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선생을 만날 때마다 놀렸다지요. “바람이 불기에 김 선생이 날아갈 줄 알았는데 제시간에 도착했네.” 그렇게 농반진반의 걱정을 샀던 선생께서 1세기의 장수를 누리는 것은, 매사에 조심하며 자기 관리에 철저한 덕분일 것입니다. 중년에 시작한 수영을 요즘도 1주에 2번 하시며 심신의 피로를 푼다고 했지요. 강연과 집필 활동을 꾸준히 하시는 것도 건강 비결일 것입니다. 선생께서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연재하는 글을 즐겨보고 있는데, 여전히 손으로 원고를 쓴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90이 넘으니 체력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독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머니와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벗이었던 김태길, 안병욱(숭실대 철학과) 교수도 타계한 후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적막하다는 것이지요. 선생의 에세이를 보면, 중년에 노모의 소소한 이야기를 매일 들어드렸던 기쁨이 있지요. 또 노년에 뇌출혈로 쓰러진 부인을 20여년 간병할 때의 슬픔도 있고요. 요즘도 그 기쁨과 슬픔이 암암히 떠오르며 그립다는 ….
선생과 김태길, 안병욱 교수 세 분은 대중에게 고급 교양을 전하는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서 유명했습니다. 세 분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가 어느 때인가’를 숙의했는데, 60세에서 75세까지로 결론을 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성숙한 60대가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인데, 75세까지는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성장의 전제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꾸준히 독서를 할 것, 자신만의 취미를 가질 것, 절대로 놀지 말고 일을 할 것.
선생께서는 “행복하려면 높은 지위를 탐하지 말고,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의 존경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재직했던 연세대 후배 교수들에게도 그렇게 당부한다지요. “총장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돼라.”
철학자인 선생께서 우리 정치와 경제에 대한 생각을 길게 말한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청와대에 포진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독선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정의를 앞세운 독선은, 신앙을 내세운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배타적 편견처럼 공동체에 해롭다는 것이 선생의 지적이었습니다. 경제 정책이 이념 편향에 물들어 시장 경제의 효능을 해치는 것도 우려스럽다고도 했습니다. 소득 격차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고소득층을 핍박하고 기업을 때리는 방식은 결국 모두가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선생께서는 그것을 170여 년 역사를 지닌 사회주의의 도정에서 봤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선생께서 서북 지역 출신의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부터 장준하, 함석헌, 류영모, 김재준, 강원용, 김교신, 장기려까지 서북으로 불리는 평안도 출신 기독교인들은 애국적 민족주의를 지향했습니다. 그것이 한국 우파의 뿌리를 형성했다는 것이, 작년에 나온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김건우 지음)’의 주장입니다. 반독재 투쟁 등의 과정에서 각 인물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애국적 민족주의라는 공통된 자양분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죠.
선생이 건전한 우파를 지향한다는 것은, 기업인과 지식인의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데서 알 수 있더군요. 기업인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회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유일한 유한양행 창립자처럼 적게 소유하고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는 것.
선생은 지식인으로서 재능이 부족했으나 대학 교육에 열성껏 봉사함으로써 대한민국에 헌신했다고 자부하더군요. 지난해 인촌상 상금 1억 원을 독서 장려 모임에 기부한 것도 그 봉사의 마음에서이겠지요. 선생은 공동체에 기여해야 개인이 행복하다고 시종 강조했는데, 과연 요즘 젊은이들이 수긍을 할까 싶더군요. 그러나 선생께서 그런 정신으로 살아온 것만큼은 분명하기에 어느 날 밤에 문득 썼다는 메모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나에게는 두 개의 별이 있었다/진리에 대한 그리움과/겨레를 위하는 마음이었다/그 짐은 무거웠으나/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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