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6월 당국의 승인 없이 방북한 한상렬 목사가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오고 있다. ‘로동신문’은 한 목사의 행적을 상세히 보도했다.  자료사진
지난 2010년 6월 당국의 승인 없이 방북한 한상렬 목사가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오고 있다. ‘로동신문’은 한 목사의 행적을 상세히 보도했다. 자료사진
북한교회硏 유관지 원장 분석

16년간 종교기사는 428건뿐
한상렬목사 30차례 최다 등장


북한의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종교기사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의 종교단체 소식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자주 등장한 인물도 통일운동을 펼쳐온 남측의 한상렬 목사였다. 북한의 종교를 대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북한교회연구원의 유관지 원장이 개신교 월간지 ‘기독교사상’ 최근호에 게재한 ‘로동신문의 종교 관련 기사(2002∼2017)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16년간의 ‘로동신문’ 종교 관련 기사는 428건으로 연 27건 정도에 그쳤다. 2010년대 들어 ‘로동신문’의 종교 관련 기사, 특히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관련 기사가 크게 줄었다. 유 원장은 “선전선동 방향의 변화, 종교 정책의 변화 등으로 그 이유를 추정해보지만,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기간 종교 관련 기사 428건 중 4분의 1 정도인 106건이 남한 종교인이나 종교단체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성명을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2002년 1월 1일 “‘이북의 사회주의가 제일이다’ 남녘 겨레의 동경심”이란 기사는 ‘남조선의 한 종교인’ 소식으로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해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가 발생해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많았는데, ‘로동신문’은 이와 관련된 남한 종교계의 동향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해당 기간에 ‘로동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종교인사는 2010년 6월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방북해 70일간 북한에 머문 뒤 판문점을 통해 돌아온 한상렬 목사였다. 신문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남한에서의 재판 소식까지 총 30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종교계 인사는 남한에서 제24대 천도교 교령을 지냈고 1997년 입북해 조선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을 맡았던 오익제와 천도교 제7대 교령을 지낸 최덕신의 부인으로 1986년 입북해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직책을 지낸 류미영이다.

반면 조그련 위원장을 지낸 강영섭 목사(2012년 작고)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등 주요 직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망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는 등 등장 빈도가 낮았다. 조그련은 강 목사의 부친인 강량욱 목사가 창립했고, 아들인 강명철 목사가 현 위원장으로, 3대(代)가 그 수장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모친인 강반석의 가계(家系)란 점에서 다소 의외다. 강명철 목사의 이름은 2013년 9월 세계교회협의회(WCC) 대표단의 방북 때 처음 ‘로동신문’에 언급됐다. 유 원장은 “이전에는 종교단체들 가운데 조그련이 해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과 귀국하는 소식이 제일 많았으나, 최근에는 그런 기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로동신문’은 남한에서 매년 열리는 문익환 목사나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추모행사 등 관련소식은 거르지 않고 보도했다.

유 원장은 “이 작업을 하면서 종교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태도는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면서 “앞으로 로동신문 전체(1945∼2018)의 종교 관련 기사 분석을 시도해 봄 직한데,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도 1940년대와 1950년대 신문은 보관돼 있지 않거나 결호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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