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회담 일정이 추석 연휴 직전인 오는 18∼20일로 확정됐다.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최우선 과제인 북핵 폐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이벤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식은 곤란하다. 두 사람의 만남이 5개월 만에 세 번째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 회담은 더욱 실질적 회담이 돼야 하고, 성과도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김 위원장은 5일 문 대통령 특사단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북과 남이 적극 노력하자”고 하면서 “북·남 관계가 탈선 없이 곧바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육성으로 공개된 적이 없다. 늘 남북 당국자의 입을 통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또 비핵화와 관계없이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문 정부를 계속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를 무시하라는 뜻도 담겼다.

문 정부 대북 정책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해온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핵에 모든 것을 걸면 남북관계가 잘 안 되고 북의 개혁·개방을 끌어내는 데 어렵다”고 했다. 북핵을 용인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관계가 비핵화와 미·북 관계를 추동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와 등져가며 ‘우리 민족끼리’ 노선을 추구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기류는 대다수 국민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남북 기류와는 반대로 미국은 비핵화 없는 남북 경협 등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달 내 설치가 예고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및 관련된 경유·자재 반출, 남북 철도 연결과 관련된 경유 반출, 북한산 석탄 반입 등을 제재 위반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특사단 방북에 맞춰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문 정부는 ‘남북 문제는 민족 문제’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 인식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비핵화 없는 경협은 신기루나 마찬가지다.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문 대통령은 그만큼 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에 초점 맞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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