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 열어갈 미지의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진실과 믿음을 분별하고 모든 존재를 위한 동정심을 계발하며,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신의 행동과 세계 전체에 책임을 지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영사 제공
유발 하라리는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 열어갈 미지의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진실과 믿음을 분별하고 모든 존재를 위한 동정심을 계발하며,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신의 행동과 세계 전체에 책임을 지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영사 제공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사피엔스’‘호모 데우스’ 著者
다가온 미래 화급한 話頭 제시

‘성장의 덫’에 몸부림치는 人類
빅데이터 악용한 ‘디지털 독재’
정보·생명기술 새로운 위협도

치열한 성찰 통해 정체성 확보
세상의 큰 그림 그릴 수 있어야
새 정치경제 모델 가능성 모색


“지금 세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유발 하라리의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사이에 있다. ‘사피엔스’가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걸어온 과거를, ‘호모 데우스’가 ‘신이 된 인류’가 열어갈 먼 미래를 다뤘다면, 이 책은 현재를 가까운 미래를 위한 생각의 재료로 독해한다. 산업혁명의 시대에 칸트가 인류를 대신해 ‘계몽의 의미’를 물었듯, 하라리는 정보혁명의 시대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조만간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우리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하라리에 따르면, 인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은 인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우리는 ‘데이터 독재’가 가져올 영속적 독재를 막을 수 있는가? 국가, 민족, 종교, 문화 등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수단인가? 우리는 아이들한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20세기는 ‘자유의 서사’가 인류사의 절정에 오른 시대다. “증기기관과 정유공장,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산업시대의 세계”에 적절히 대응하려고 구축한 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파시즘 서사와 공산주의 서사를 차례대로 물리치고 ‘역사의 종말’을 가져왔다. “자유시장과 책임정부, 민주주의와 인권, 국제법의 원칙”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줬고, 체제경쟁이 끝난 만큼 인류는 이제 무한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자유의 서사를 현실에서 떠받친 것이, 우리도 익히 경험해 온 것처럼, ‘성장의 서사’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고 약속”하고, 결국 각종 사회안전망을 통해 평등의 요소까지 수용함으로써 자유주의는 격차에 따른 불만을 줄이고 계급 간 화해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돈이 기승을 부리는 지옥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날 세계는 “생태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성장의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중이다. 성장으로는 더 이상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구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까지 파이를 무한정 늘리기만 한 성장의 방향이 생태적 위기의 원인이고, 인류의 존재의미를 위협하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이 성장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은 인간의 이해를 추월해 발전함으로써 인류를 ‘어리석은 바보’에 ‘대책 없는 실업자’로 만드는 데다 생명기술은 수집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간을 해킹해 감정을 강제로 조종하고 유전자를 조작해서 새로운 인류를 생산하는 데까지 왔다. 독재 권력은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면적 감시체제를 작동시키고 ‘가짜진실’을 유포해 의사결정과정을 조작한다. 포퓰리즘의 득세, 민족주의의 발흥, 테러리즘의 만연, 종교 간 갈등과 분쟁, 난민과 이민이라는 새로운 약자에 대한 차별 등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덧붙어 있다. 과연 인류는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라리는 삶의 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변화 앞에서 인류가 새로운 도전을 이겨내고 또 다른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치열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보하고, “정보세”나 “기본 보편소득”과 같은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의 가능성을 따져보자고 이야기한다.

하라리가 관심을 쏟는 것은 실제적 해결책보다 철학적, 윤리적, 정신적 준비인 듯하다. 그는 “진실과 믿음을 분별하고,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모든 존재를 위한 동정심을 계발하며,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지혜와 경험을 이해하고,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신의 행동과 세계 전체에 책임을 지”는 성숙함을 주장한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지 않음을 수용하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을 권유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더 많은 정보”를 집어넣기보다는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을, 정보 조각을 모아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력, 창의성 등을 기름으로써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하라리는 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극심함을 인간 정신이 견딜 수 있느냐를 염려한다. 무차별 살인 등 혐오감정의 극단적 표출이 잦은 것을 보면 스트레스는 이미 인간 정신의 부하를 넘어선 게 아닐까 두렵다. 자기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 어쩌면 현대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명상 등의 훈련을 통해 “정신을 가라앉히고 집중”함으로써 “우주와 삶의 의미”를, “우리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탐사”하는 일이 소수의 성직자가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사실과 통찰의 조각들을 모아 거대한 서사를 짤 줄 아는 저자의 편집적 재능은 ‘21가지 제언’에서도 여전히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때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특유의 예언적 비약’마저도 사랑스러울 정도다. 인문의 임무 중 하나가 생각의 지평을 올려주고 탐구를 부추기는 것이라면 이 책에서 하라리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낸 듯하다. 560쪽, 2만2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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