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 앤디 메리필드 지음, 박준형 옮김 / 한빛 비즈
모든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문제와 이런 전문가들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 격렬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도시 근대화에 주목하면서 도시에 거주하거나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되찾는 운동을 꾸준히 지지해온 도시 이론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문가들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저자가 ‘소위 전문가로 지칭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를 비판하는 지점은 두 가지. 하나는 전문가들의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그래서 단편적인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사욕과 저의를 감춘 채 무책임하게 행하고 있는 왜곡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전문가집단은 사회의 어젠다를 독점하고 있으며, 논쟁을 주도하고 종래에는 결론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전문가임을 내세워 효율을 이유로 손쉽게 정책을 정하거나 바꾸고, 의도를 숨기고 바꾼 정책으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부작용의 원인은 전문가들이 가진 사회적 권한이 비대하기 때문이라는 것. 전문가가 모두 틀린 답을 내놓거나 사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 결과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며 공정한 법 집행을 하지 않는 법률가, 기관에 빌붙어 양심을 파는 교수,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짜깁기해 내놓는 언론 등의 적폐가 쌓여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가 내놓는 전문가들의 실패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저자가 도시 이론가인 만큼, 책에는 전문가들이 주도한 무책임한 도시계획의 처참한 실패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전문가들이 주도해 운영하는 시스템의 이런 폐단에 맞서기 위해 ‘아마추어 정신’의 연대를 제안하고 있다. 통상 아마추어란 말은 ‘서툴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아마추어는 이와는 좀 다르다. 저자는 수익과 보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이끌리는 아마추어 정신이야말로 현대사회에 만연한 전문가의 폐해를 상쇄할 수 있는 무기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다소 전복적이다. 노동을 두고 사람들이 말썽을 피우지 못하도록 거리에서 몰아내기 위해 지배계급과 전문가들이 날조한 음모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을 때조차 불필요해 보이며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런 직업이 없을 때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문가에 의해 설계된 노동의 형태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품는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을 꺼뜨리고, 결국 사람들이 직업을 싫어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주기적으로 업무를 바꾸어 다양한 일을 하게 하고 그 일을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노동의 일률적인 행위와 강도의 흐름을 완화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일자리를 공유하고 자유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일에 손을 댈 것이며 그것이 아마추어주의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더 나은 사회와 더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비결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적잖고 아마추어 문화를 확대해 사회 인프라에 통합한다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할지도 의문스럽지만, 사회 전반을 구동하고 있는 원칙이 과연 정당한지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만으로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328쪽, 1만70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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