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결혼 할때 주판 두드리며 계산
엄마 돼선 자녀에 모든것 희생
모성에 끌려다니다 자신을 잃어
공통분모는 생존경쟁·각자도생
각박한 생활에 “어쩔수 없어”
스스로 변명하고 항변하지만
행복한 세상은 함께 만드는것
나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할때
언제나 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현장 사회학적 작업을 해온 사회학자 오찬호는 이번에는 우리의 연애-결혼-출산-육아를 한 줄에 꿴다. 이 궤적의 공통분모는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이다. 결정적인 변화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기점으로 이뤄졌다.
이제 연애나 결혼은 주판을 두드려야 하는 일이 됐다. 사랑을 강하게 느끼지 않는 이상 ‘지옥의 문’이 될 수 있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가면 갈수록 ‘자유연애’보다 ‘자유구매’에 가까워졌다. 6~7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겨우 소형 아파트 하나 장만할 수 있는 현실. 어디 집 문제뿐인가, 육아와 자녀 교육은 또 얼마나 치열한지. 게다가 결혼의 장에 들어가는 순간, 어이없게도 남녀 성 역할이 쉽게 재등판한다. 높아진 주거 비용이나 첩첩산중인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 특히 시댁에 경제적 도움을 받는 순간, 부모의 간섭을 감수해야 한다. 결혼은 어른들이 더 큰 어른이 되기 위한 결합인데, 결혼을 하면 오히려 자기결정권이 사라지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성인으로 진입함과 동시에 생존을 고민하는 불안의 시대, 한국에서 결혼은 공포가 됐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연애-결혼-출산에 대한 공포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존재를 미약하게 만드는 경제 사정, 둘째는 버티기 쉽지 않은 인간관계의 문제, 그리고 “지금껏 배운 것이 너무나도 무용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빌어먹을 성 불평등의 세상”이다. 이를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기혼자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이어 여성이 자신의 제1 역할을 엄마로 규정하면서 어떻게 모성에 끌려다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는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 육아서에 어떻게 주눅 드는지, 자녀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면서도 결국 ‘내 아이만은 남들과 다르게 키우겠다’는 욕망에 부모와 자녀 모두 어떻게 희생자가 되는지 보여주며,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한국의 가족은 갈수록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은폐된 진실을 ‘아빠 캠프’와 ‘노변정담’에 대한 부모의 착각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지금도 어느 날 하루, 텐트 치고 모닥불 피워 놓고 아빠가 야단법석을 떨며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면 어색한 관계가 회복된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화로 앞에 모이면 그것이 행복이고 과일이라도 함께 먹으면 화목할 줄 알지만, 그 앞에 앉은 다 큰 자녀는 괴로울 뿐이라고 전한다.
무엇보다 자녀가 그릇된 사회에서 버티기 위한 생존의 테크닉만 몸에 지닌 채 어른으로 살아가는 건 정직하지 못한 독립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다 알아, 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라는 변명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변명하고, 아이들이 시대의 피해자라며 억울해하고 내 아이만은 현실을 버텨낼 수 있도록 기르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것으로 어떤 변화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대신 누구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임을 잊지 말자고 한다. 우리는 육아 지침서가 아니라 사회학 보고서를 읽어야 한다. 코 빠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이 기괴한 연애-결혼-육아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자신에 대해, 가족에 대해, 자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308쪽, 1만6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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