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수천억달러 차관 빌려준뒤
인프라 건설 사실상 독점 방식
‘부채 함정·독이 든 사과’ 논란
파키스탄,경전철 사업 중단후
IMF에 구제금융 신청 준비중
스리랑카는 항만 건설했지만
빚 탕감위해 中에 운영권 넘겨
中,부정적인 이미지 개선 나서
“해당국에 혜택 돌아가게 할것”
2013년 9월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 강연에서 처음 밝힌 중국의 글로벌 경제개발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가 시행 5주년을 맞아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중국 주도로 전 세계 78개국에 교통·물류망을 조성해 글로벌 경제 벨트를 구축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 실제로는 과도한 채무로 해당국들이 빚더미에 앉으면서 ‘부채 함정 외교’ ‘채무제국주의’ 등으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3년간 아프리카 국가에 600억 달러(약 67조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의 삶 개선, 계층 격차 해소에 더 주력하라는 내부 비판도 쏟아졌다.
일대일로 5주년을 맞아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시 주석 발언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며 성과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시 주석은 8월 27일 일대일로 사업 추진 5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일대일로 건설을 통해 동주공제(同舟共濟·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정신,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갖는 운명공동체 의식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대일로는 중화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중국몽(中國夢)’과 함께 시 주석의 핵심 대외 프로젝트다. 미국 패권에 맞서 중국의 위상을 키우는 글로벌 전략이자 경제적으로는 과잉 생산설비 해소, 안정적 에너지 수입원 확보, 신성장 동력 육성, 향후 경제통합 주도권 확보 등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을 중국 은행을 통해 차관 등의 형식으로 빌려주고 중국기업들이 인프라 건설을 사실상 독점하는 사업 방식으로 “중국이 단물만 쏙 빼먹고 해당국은 과도한 빚에 허덕이는 구조를 낳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독이 든 사과’ 전락한 일대일로=7일 외신 등을 종합하면 현재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78개국 중 아시아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상당수 국가가 무리한 투자계획 탓에 재정난에 빠지거나 부채 상환능력 부족으로 당초 계획을 폐기하거나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동안 추진된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32%에 이르는 4190억 달러(470조 원) 규모 프로젝트가 사업 지연, 주민 반발 등으로 좌초 위기에 놓인 상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일대일로 참가 78개국의 평균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또는 채무불이행 수준인 Ba2로 평가하기도 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6대 경제회랑 가운데 과도한 채무 등으로 삐걱거리는 지역으로는 중국∼인도차이나, 중국∼방글라데시∼인도∼미얀마가 대표적이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일대일로 초입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줄줄이 빚에 나자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라호르 경전철 사업 등 620억 달러(69조6260억 원) 규모의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 사업을 추진해 온 파키스탄은 지난 2년간 외환보유액 급감과 중국에 진 막대한 부채 탓에 사업 중단을 결정한 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중국 차관으로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지만 적자만 쌓이자 지난해 12월 11억2000만 달러(1조2576억 원)의 빚 탕감 조건으로 항구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겼다.
미얀마는 8월 초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서부 라카인주 차우퓨항 개발사업 규모를 73억 달러(8조1950억 원)에서 13억 달러(1조4594억 원) 규모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도 8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이 사업비 85%를 융자하는 조건으로 추진해온 220억 달러(24조7214억 원) 규모의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과 23억 달러 규모의 송유·가스관 사업 등을 중단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중국이 사업자금 대부분을 제공하지만 중국 업체가 시공사를 통해 대금을 다시 가져가는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네팔은 중국 싼샤그룹에 맡겼던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직접 진행하기로 했다.
해상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아프리카도 일대일로를 둘러싸고 속내가 복잡하다. 3일 시 주석이 발표한 600억 달러 규모의 원조 및 투자 계획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분명 희소식이면서도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우려가 상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앞서 바누아투 국회의사당과 총리실 건물, 1000석 규모의 컨벤션센터 건설 등을 지원했고 추가로 대통령 집무실, 재무부 빌딩을 새로 지어주고 외교부 건물도 확장해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군사기지를 요구했다는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인구 27만 명의 바누아투는 4억4000만 달러(4939억4400만 원)의 대외채무 중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 진 빚이다. 인근 통가는 중국에 빚진 1억1700만 달러(1313억4420만 원)를 탕감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각지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잡음을 일으키는 것과 달리 최근 나란히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공동운명체가 된 러시아와 터키, 이란 등을 무대로 한 일대일로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다. 러시아는 당초 ‘유라시아 경제 구역’을 내세우며 일대일로와 마찰을 빚었다.
◇커진 미국의 견제, 깊어진 중국의 고심=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견제 및 반발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맞서 지난 8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1억1300만 달러(1266억 원)를 투자하는 펀드를 먼저 만들고 향후 투자액을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이 거론한 주요 투자 분야는 에너지와 인프라, 디지털 경제 등으로 중국 일대일로가 집중하는 분야와 겹치는 부문이 많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투자는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와 번영을 위한 착수금 성격”이라며 “우리는 결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지배를 추구하지 않으며 이를 추구하는 나라에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투자 펀드를 꺼내 든 이유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아시아 회귀 전략이 중국을 견제하기엔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 규모에 비하면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착수금’은 0.01%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이 정도 규모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시행 5년 만에 좌초 위기를 맞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회생시키기 위해 먼저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는 경제협력이지 지정학적, 군사적 패권 추구가 아니며 ‘차이나 클럽’을 결성하려는 의도도 없다”며 “해당국의 요구를 우선시하고 지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프로젝트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외부의 비판적 시각을 의식해 일대일로가 순수한 경제협력 의도에서 시작된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계속해서 추진할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도 “중국 외교 역사에는 식민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신식민주의 논란을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미국 등 외부 견제 및 비판과 함께 일대일로 참가국 내부의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은 계속된다. 베이징 소식통은 “일대일로가 지금처럼 일방적 사업 구조와 중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계속된다면 사업 자체의 존속이 힘들어질 수 있다”며 “일대일로가 ‘윈윈(win-win) 전략’임을 현실에서 입증해야 타당성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
정철순·김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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