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춘 한국테니스진흥협회 회장이 5일 경기 남양주시 종합운동장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를 구사하며 날카롭게 공을 응시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성기춘 한국테니스진흥협회 회장이 5일 경기 남양주시 종합운동장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를 구사하며 날카롭게 공을 응시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동호인 테니스의 아버지’ 성기춘 테니스진흥協 회장

30년 테니스로 체중 67㎏유지
스윙 300~400개로 하루 시작
4대 메이저대회도 20회‘직관’

한국 동호인 테니스 기틀 마련
2007년 회장 취임후 협회 운영
협회주관 동호인 대회만 48개

81년 B형간염 걸려 투병생활
86년 운명처럼 테니스와 만나
수준급이지만 여전히 교습받아

소액 모아 테니스 꿈나무 지원
테니스 매력 알리는데 모든 힘


성기춘(68)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회장은 한국 동호인 테니스계의 아버지로 불린다. 테니스 동호인 사이에선 성 회장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만큼 성 회장의 테니스 사랑은 각별하다. 성 회장은 지난달 27일부터 8박 9일 일정으로 동호인 대회 우승자 및 협회 임직원 33명과 함께 세계 4대 테니스 메이저대회로 꼽히는 US오픈을 관람하고 왔다. 미국 뉴욕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15시간을 날아 4일 오후 한국에 도착한 성 회장은 바로 다음 날인 5일 평소 자신이 훈련하는 경기 남양주시 종합운동장 테니스코트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았는데 피곤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성 회장은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테니스만 생각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68세라는 나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성 회장은 한국 동호인 테니스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다. 한국 동호인 테니스는 23년 전인 1995년 대한테니스협회에 동호인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테니스 전문잡지인 테니스코리아가 동호인 랭킹제도를 도입하면서 체계를 잡기 시작한다. 성 회장은 2000년 한국동호인테니스연맹 창설을 주도했고, 테니스코리아가 관리하던 랭킹제도를 연맹으로 이관하도록 했다. 성 회장은 2007년 연맹의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한국테니스진흥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다. 성 회장은 “협회가 성장하면서 동호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현재 테니스 동호인은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설립 초창기엔 제대로 된 동호인 대회 하나 없었지만, 올해는 한국테니스진흥협회가 주관하는 전국대회만 48개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성 회장의 열정은 20대 못지않은 강철 체력에서 나온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성 회장은 170㎝, 67㎏의 단단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체중 변화가 거의 없다. 매일 오전 6시 50분 기상한다는 성 회장의 하루는 스트레칭으로 시작된다. 눈을 뜨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다리 벌리기 등으로 30분 정도 몸을 풀어준다. 성 회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간단한 스트레칭만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스트레칭을 마치면 집 구석구석을 걸은 뒤 분신과 같은 테니스 라켓을 잡는다. 매일 300∼400개의 스윙 연습을 한다. 아침 식사는 정확하게 7시 40분에 한다. 아침 식사를 대충하는 경우는 없다. 식사량은 많지 않지만, 소고기와 생선 등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며 가지와 오이 같은 채소를 즐긴다. 아사이베리 등 과일도 꼭 챙겨 먹는다.

8시 30분이 되면 성 회장은 언제나 테니스코트로 나선다. 수준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프로 출신 코치에게 훈련받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협회로 출근해 업무를 본다.

성 회장이 처음부터 건강함을 유지했던 건 아니다. 1979년 11월 부인 송윤자(60) 씨와 결혼한 성 회장은 1981년 1월 B형간염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성 회장은 “지금도 B형간염은 위험한 질병으로 꼽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거의 죽는 병이었다”며 “의사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다”고 회상했다. 72㎏였던 체중이 60㎏까지 빠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아내 배 속엔 아기가 있었다. 성 회장은 “죽더라도 아이 얼굴 한 번은 보고 죽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7개월의 투병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해 5월 건강하게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성 회장은 현재도 5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는다. 성 회장은 “아파본 사람은 건강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며 “지금까지 건강 관리에 힘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성 회장은 투병 후 1년 반 동안 ‘강제 휴식’을 해야 했다. 이후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하며 재기에 나선 성 회장은 1986년 테니스와 운명처럼 만난다. 이웃이던 고등학교 동창이 매일 테니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성 회장은 천안중·고교 시절 탁구선수로 활약했을 만큼 라켓으로 하는 운동엔 소질이 있었다. 특히 승부욕이 대단했다. 성 회장은 “무엇을 하든지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며 “테니스도 한번 시작하고 나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지금도 경기를 할 때면 무조건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7시즌 연속 장년부 1위를 지켰고, 전국대회에서 150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성 회장이 철저한 자기관리와 뛰어난 테니스 실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긍정적인 사고다. 성 회장은 유소년 선수들에 대한 지원, 군부대 위문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며 모범이 되고 있다. 성 회장은 “내가 더 가지려는 욕심보다 베푼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며 “언제나 ‘나는 손해를 보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테니스진흥협회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유소년 지원금으로 2000원을 내도록 하고 있다. 적립한 돈으로 초·중·고 테니스 꿈나무를 지원한다. 지원을 받은 선수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면 격려금도 전달하고 있다. 최근엔 고교 선수들에게 테니스화와 양말 등 장비를 지급했다. 성 회장은 “후원을 받은 선수가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올 때 가장 뿌듯하다”며 “유소년들이 나중에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70세를 앞뒀지만, 앞으로 이루고픈 일들이 무수히 많다. 성 회장은 “힘이 닿는 날까지 한국 동호인 테니스를 이끌고 싶다”며 “특히 테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번 배워보고 싶은데’라고 마음먹을 수 있도록 테니스의 매력을 알리는 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성 회장은 내년 1월 호주오픈이 열리는 멜버른에 갈 예정이다. 지금까지 성 회장은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등 4대 메이저대회를 20여 차례 직접 관전하며 테니스 강국의 비결을 공부해왔다. 성 회장은 “단순히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라며 “동호인들과 함께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 시설물,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관들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를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남양주=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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