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 ‘북핵에서 종전선언이 먼저입니까, 비핵화 조치가 먼저입니까?’ 선(先)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비핵화 조치가 중단된다면 종전선언은 없었던 것이 되나요?’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연내 종전선언 추진 의지를 밝혔던 만큼 기자들의 질문은 특권인 동시에 의무다.
종전선언은 조건부가 아니다. 미·북 또는 남·북·미, 남·북·미·중이 참여하게 되면 불가역적인 선언이 된다. 북한이 차일피일 비핵화 행보를 미룬다고 해서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유엔사령부 해체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래서 종전선언이 체결되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친서에는 적어도 ‘종전선언 후 ○개월 안에 핵시설 신고를 포함한 비핵화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는 카오스, 혼돈으로 요약된다.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서 협상 취소와 재개를 반복하고, 무역전쟁에서 동맹관계를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다. 원칙주의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에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북핵 문제는 언제든 미국 국내 정치에 이용될 우려가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는 내부의 외교·안보 인사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자신의 역량으로 북핵을 해결할 수 있는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3일 ‘특사단이 다시 평양에 갑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글을 페이스북에 띄웠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동의 없이 시대사적 전환을 이룬다는 건 사실상 가능하지 않습니다’는 전제를 달고 ‘하지만 지난 1년여, 결국 내일을 바꾸는 건 우리 자신의 간절한 목표와 준비된 능력임을 새삼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로 이어져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내일은 다르게 시작됩니다’라는 결론으로 이끌어졌다.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 실장 글에서 주체사상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회적 운동의 주체가 인민 대중이고 인민 대중은 노동계급이며, 노동계급의 이익을 당은 옹호하고, 수령의 의사가 곧 당의 입장이라는 수령론으로 확장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객관적 세계를 주관적 인간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은 제한적 의미만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북핵 문제가 일방의 외교적 노력과 주관적 의지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청와대는 인식해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보증인으로 나서고 있다. 좌파학자로 알려진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최근 CNN 방송 등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하고 개혁개방에 나서면 체제 붕괴로 이어지는 만큼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종전선언만 이뤄지고 비핵화가 미뤄지면 문재인 정부는 보증 책무를 져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을 초래했다는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고 대한민국이 북핵의 노예로 종속되는 비극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j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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