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깊은 집합적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대형 안전사고(安全事故)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는 급격한 조치를 하면서, 혁신적 안전사고 방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도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형국이니, 마침내 허망한 구호의 메아리로만 남을 듯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수십 명씩 사상자를 낸 대형 화재가 매년 1, 2건씩 발생했다. 그때마다 화재·소방 전문가들이 매스컴에 나와 판박이형 화재 원인을 지적하곤 하는데, 이제는 삼척동자도 그 ‘한국형’ 화재 원인을 암기할 정도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서울 금천구 가산동 오피스텔 공사장 대형 싱크홀이나 상도동 상도유치원 붕괴와 같은 안전사고의 원인도 지난 1990년대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그 후 발생한 유사한 토목건축 안전사고들의 근본 원인과 판박이 같다. 원인이 판박이인 만큼, 그 해법의 수사학 또한 판박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관계자는 사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보완하거나 신설하고, 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강화하겠다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유사한 안전사고가 줄어들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서 우리는 안전사고를 방제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시스템적 장치’의 작동이 그 사회의 ‘안전의식 실천문화’와 불가분한 관계임을 통찰해야 한다. 이 두 영역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안전사고가 줄어들고 예방된다. 우리가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서 주문하고 마련하는 ‘제도·시스템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안전의식 실천문화’의 토대가 받쳐 줘야 한다.
산업 선진국으로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한 우리 사회의 제도·시스템적 수준은 상당하다. 적어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20, 30년 동안 수정하고 보완해 온 것이 그것이었다. 안전사고 방제 시스템과 매뉴얼 및 관련 법규와 규정이 마련돼 있다.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운영 담당자의 수행 능력 또한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와 불가분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할 ‘안전의식 실천문화’가 취약하다. 이는, 안전사고에 대한 실천적 예민함이 취약한 ‘안전불감증’의 문화적 상태를 말한다.
30여 년 전 영국에서 거주할 때, 매년 주기적으로 2인으로 구성된 소방화재 점검팀의 방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점검팀은 시내 곳곳에 있는 대학 기숙사의 모든 방의 천장에 부착된 화재경보기의 작동 여부를 가스 불을 대가며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5년의 거주 기간에 그들의 연차 방문이 거른 적이 없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는 어떨까? 지금껏 30여 년 간 아파트에 거주해 왔지만, 단 한 차례도 집 천장에 부착된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 작동 점검을 받아본 적이 없다. 관련 점검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있지만 준수하지 않고,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특정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집합적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세월호 갑판 위 비상 보트의 탈착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고, 화재 사고 때마다 쉽게 개폐돼야 할 화재 비상구가 늘 폐쇄돼 있거나 소방차 비상도로가 늘 불법 주차로 막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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