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논설위원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보다 더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한 함경남도 주민이 “지난 8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남조선 친척으로부터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을 충성 자금으로 바쳤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혔다. 이산가족 행사 이후 참석자 전원이 사상교양 사업과 총화사업을 갖게 되는데, 이때 한국 친인척으로부터 받은 현금·선물을 신고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고 절차가 끝나면, 각본에 따라 상봉 가족 중 한 사람이 일어나 “당과 조국의 은혜로 남쪽 가족을 상봉하게 됐으니, 당과 조국에 성의를 표시하자”고 제의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옳소’하고 박수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액수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대개 받은 금액의 절반 정도를 낸다고 한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도 행사 준비 교육을 위한 한 달 숙식비, 그리고 상봉행사용으로 마련해준 옷과 선물 비용 명목으로 뺏기게 된다. 또, 고향에 돌아가면 지방 간부와 이웃에게도 인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받은 돈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 가족에게 줄 수 있는 현금을 1500달러 이내로 제한하고, 선물도 귀금속, 전자기기, 가죽이나 모피 제품 등 고가 제품은 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 ‘충성 자금’은 1970년대에 시작돼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중반에 본격화됐다. 초기엔 특권층의 충성 경쟁용이었으나, 점차 의무 사항으로 변해갔다. 연초에 북한 노동당 중앙당 조직지도부가 중앙급 기관에 충성자금 목표액을 내려보낸다. 이에 각 기관은 충성 자금 마련을 위한 결의 모임을 갖고 그야말로 ‘전투’에 돌입한다. 이에 목표를 채우기 위해 북한 외교관과 무역일꾼이 불법 무기 거래, 마약 밀매, 위조지폐 및 위조 담배 제조에 나섰다가 발각돼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과거엔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명절공급’을 내려보냈다. 그런데 올 북한 정권수립일엔 70주년임에도 정치 행사만 요란했지 일반 주민용 특별 배급이 없었다. 지역 식품상점에 가구별로 술 1병이 공급됐으나 장마당 가격으로 판매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김정은이 9일 대중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마르고 있다. 그런데 못 퍼줘 안달 난 사람들도 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