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희, 숲에서 길을 잃다, 영상회화(122컷), 캔버스 위 아크릴, 140×200㎝, 2012
정석희, 숲에서 길을 잃다, 영상회화(122컷), 캔버스 위 아크릴, 140×200㎝, 2012
그림이지만 그림이 아닌, 그림자만을 보여주는 영상 작업의 한 컷이다. 우리가 보는 이 이미지는 번역과 유사한 재현이나 복제과정을 몇 차례 거친 결과물이다. 현실 대상을 그렸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다시 촬영하고, 또 촬영된 이미지를 다시 캡처, 바로 이 지면에 인쇄하고, 이 컷은 또 누군가에 의해 SNS라는 거미줄을 통해 좀비처럼 출몰할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작가 정석희의 화면에서 시작되는 이미지 생산과 유통의 경로이다. 영상에서는 정(靜)과 동(動)의 두 트랙 위에서, 숲속의 점경인물이 움직인다. 122개의 컷이 그려지고 촬영되고, 또다시 그려지는 반복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원래의 사물이나 실재는 알 길이 없고 정보가 진리를 대신하는 세계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처럼 원전은 없고 번역만 있는 세계 말이다. 인물이 사라지고 없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

이재언 미술평론가·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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