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옥 前 국방부 차관

6·25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60여 년 만에 선진 10위권대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초라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의 핵무기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황당하게 비친다.

북한의 핵 보유는 단 한 발일지라도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방에는 치명적이다. 북한의 핵 보유를 결코 잠시라도 묵과해선 안 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 상황은 북핵 문제가 점점 장기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런 추이를 받아들이면서 김정은 정권과의 관계 개선만 추구하는 형국이다. 지난 4월과 5월의 남북 정상회담도 그랬고, 이번 18∼20일 3차 문·김 회담도 그렇다. 문 대통령이 1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평양회담의 핵심 현안으로 꼽은 “전쟁 공포 해소”와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촉진”도 남북 관계 개선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편, 전망이 불투명한 문 정부의 저돌적인 남북 관계 개선 추진과 함께 우리의 국방 태세를 이완시키는 ‘국방 쓰나미’가 급속히 밀려오고 있다. 문 정부의 국방 당국은 이미 전방 대북 심리전 방송장비를 철거했고, 연례적인 한·미 연합훈련도 중지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요 야전 전투부대 다수를 해체하고, 전방 및 해안지역 철조망도 제거하고, 북한군의 전차를 막기 위한 대전차 방벽도 체거하는 등 군의 방어태세를 약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병력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인근 해역에서 사격훈련을 중지하는 문제도 북한과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군(軍)은 이런 모든 군사 조치가 북한의 핵 위협과 대남 혁명전략 노선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가?

왜 우리에게는 1977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계획을 통렬히 비판하다 본국으로 소환돼 결국 퇴역당한 당시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었던 존 싱글러브 장군과 같은 군인이 없는가? 군은 이런 울분을 토하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국방 당국이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북 군사 조치들은 군의 대북 경계태세 유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평시 장병들의 대북 경계의식과 정신 자세를 이완시킬 뿐만 아니라, 유사시 전투 의지도 약화시킬 것이다. 또한,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조장하고 군에 대한 신뢰감도 잃게 될 것이며, 한·미 연합전투태세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주한미군이 과연 한국군을 동맹군으로 신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전적으로 북한의 속성과 핵 개발 의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북한 비핵화가 평화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핵 개발 이전에도 북한의 군사도발은 끊이지 않았다. 핵 문제 다음에는 화생무기 문제도 있다. 비핵화에 전부를 걸어서는 안 된다.

밀려오는 ‘국방 쓰나미’에 군(軍)은 편안한가? 휴전 이후 요즘처럼 나라의 앞날을 우려하며 불안해했던 때가 있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08년 국제 금융위기 때도“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군은 국민 앞에 군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 연합군사태세를 대폭 강화하고 국방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민과 정치권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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