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입담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할 방송인 박경림(39)은 20년간 ‘방송밥’을 먹은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1999년 국내에서 최초로 토크 콘서트를 열고, 지난 2014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며 남다른 말솜씨를 자랑하던 그는 이제 입보다 귀를 먼저 열려 한다. 그래서 오는 10월 19∼21일 ‘리슨 콘서트’를 개최한다. 하나의 입으로 말하던 그가, 이제 두 개의 귀로 듣겠다고 외친 셈이다.
“토커(talker)로 20년을 살아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부족한 제가 더 말을 잘하려면 정말 잘 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다면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심을 다해 듣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는 것이죠.”
박경림의 가장 큰 무기는 친근함이다. 길 가다 마주치는 이들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넨다. 건널목에 서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장바구니에 담긴 그날 저녁의 메뉴부터 자녀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박경림에게 꺼내놓는다.
“길다가 마주친 후 대뜸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내가 뭘 해드려야 하지?’라고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 건, 제가 뭔가를 해주는 것보다는 진심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되거든요. 어떤 편견도, 사견도 없이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를 보러 오시는 어떤 분의 이야기도 잘 듣겠다는 의미에서 ‘리슨 콘서트’라고 이름 붙이게 됐죠.”
‘리슨 콘서트’를 준비하기에 앞서 박경림은 소중한 공간을 마련했다. 마음에 맞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장소인 ‘위드림’이다. 그의 이름에서 ‘림’을 따와 ‘박경림과 함께한다’(with rim)는 의미이자, ‘우리 함께 꿈을 꾼다’(we dream)는 중의적 표현이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박경림이 동료들과 함께 꾸는 꿈은 무엇보다 크고 의미 있다.
“스케줄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9시에 출근해요. 함께 회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아요. 무언가를 만드는 창작의 공간이라서 더 좋고요. 제 크루(crew)들과 ‘대중과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모습으로 임할지’를 고민하죠. 운영까지 신경 쓰면 제 일에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대표님은 따로 계세요. 웬만한 일은 다 믿고 맡기죠.”
‘리슨 콘서트’는 돌발 변수가 더 많지 않을까? 토크 콘서트는 자신이 준비한 바를 이야기하면 되지만, ‘리슨 콘서트’에서는 관객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입에 담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라디오 DJ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진행해 온 박경림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는 눈치였다.
“라디오를 진행할 때, 아예 말을 안 하는 분도 계셨죠.(웃음) 제가 중계하는 것처럼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계십니다’라고 진행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조금 더 들어드려야 할 것 같아요. 말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하고 싶은 말이 아닌데 헛나오기도 하죠. 그래서 더 유심히, 진심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래도 박경림은 이런 우려는 모두 뒤로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들어주려 한다면 진심으로 말해줄 거라 믿고 있다. 이런 긍정의 힘이 박경림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다.
“한가지 믿는 건 ‘박경림이 들어준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오시는 분들은 소통을 원하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응원의 힘은 강해요. 제가 그분들과 소통하려고 하면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실 거라 믿어요. 저는 공연을 하며 오히려 제가 가장 큰 힐링을 얻는 것 같아요.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고, 그들도 나처럼 힘듦이 있구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죠.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활동하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이제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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