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인과관계 뒤집은 소득성장론
주택정책은 투기꾼에만 초점
성장·집값 처방 서로 엇박자

실패한 정책 고수하는 청와대
국민·나라경제 상대 실험 위험
이념 집착하다 본질 놓쳐서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이슈는 성장론과 집값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이 두 가지는 간과할 수 없는 소재였고, 지향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각 시대에 맞는 성장전략이 필요하고, 주택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단지 방법론이 다를 뿐인데, 문 정부의 경우 실험적이다. 경제학 교과서를 벗어난 변칙을 쓰거나, 한번 실패했던 방식을 다시 해보는 식이다. 실험대상은 나라 경제이면서 국민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동네북이 된 지 오래다. 국내외 정통 경제학자들은 진작 등을 돌렸고,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정책 수장을 지냈던 이들도 줄줄이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얼마 전엔 99세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까지 나서 “경제문제를 풀려면 시야를 국제무대로 넓혀야 한다”고 했다. 경제에는 국경이 없는데 국내 문제만 해결하면 다 될 걸로 믿는다는 것이다. 문 정부 정책은 한 곳만 쳐다보다 더 큰 것을 놓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저소득층 주머니를 채워 성장을 이끈다는 이론은 북한처럼 닫힌 체제라면 모를까, 개방경제에선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만 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외국 제품과 경쟁할 수 없다. 인건비가 싼 나라로 내몰리면 일자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다. 자영업 대란은 최저임금을 받는 쪽만 챙기고, 주는 쪽은 외면한 결과다. 주택정책에서도 관심은 오로지 ‘투기꾼’이다. 시장에서 투자와 투기를 가려낼 기준은 없다. 투기꾼이란 허상을 좇아 징벌적 규제를 쏟아냈지만, 지난 1년 집값은 오히려 더 올랐다. 9·13대책에선 1주택자까지 투기 영역에 밀어 넣었다. 해충을 잡자고 가장 강력한 살충제를 뿌리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진다.

인과관계를 뒤집는 것도 예사다. 소득이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소득주도 성장론 자체가 난센스다. 문 정부의 최저임금 과속에도 지난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오히려 줄었다. 일자리 성적은 참혹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소득성장론의 기본 전제부터 깨진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자산을 강제 이전한 균형발전론과 맥락이 비슷하다. 균형은 발전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발전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주택정책에서도 문 정부는 집값 급등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결과물인 집값 때려잡기에 여념이 없다. ‘미친 집값’은 서울 도심에 양질의 주택을 원하는 시장 수요를 무시하고, 재건축·재개발이라는 가장 확실한 공급 루트를 차단한 탓이다. 곧 나올 공급 대책에서도 이 방안은 빠진다고 한다. 강남 부자들이 이득을 보는 것만은 못 참겠다는 기류다.

문 정부 경제정책끼리 충돌하는 모습도 흔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직장인의 월급봉투는 얇아졌다. 투잡을 뛰거나,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9·13대책이 크게 올린 보유세는 집 한 채 가진 이들에겐 ‘장바구니 세금’이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가구에선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모두 소득성장론과 엇박자를 내는 정책이다. 1100조 원이 넘는 시중 부동자금은 집값 상승의 잠재 요인이다. 이 자금을 부동산 시장이 아닌 생산적인 곳으로 유인해야 투자·고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출구가 될 혁신성장은 규제개혁에서부터 막혀 있다. 문 대통령이 ‘붉은 깃발’로 지목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엔 여당 의원조차 노골적으로 발을 걸고 있다. 혁신산업에 관한 한 규제 무풍지대인 중국은 인공지능·드론·자율주행차·바이오 등에서 한국을 한참 앞섰다. 국내 우물 안 규제에 막힌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줄줄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소득성장 실험은 실패로 이미 결론 났다. 소득·고용 지표가 이 지경으로 파탄 났으면 궤도를 수정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지휘자 격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지표는 소득주도 성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또한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궤변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세금폭탄’은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라고 자인한 집값 대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때도 지금도 실무 기획을 맡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부동산 정책은 정치”라고 했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현 정책 결정자들을 두고 “기독교인이 성경 말씀을 원칙대로 따르느라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놓치는 것과 같다”고 걱정했다. 나라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참모들이 이념과 오기, 독선에 빠져 있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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