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역할 놓고 세대 차이

“명절에 먼저 집에 와서 일손 좀 도와라.” “네가 처신을 더 잘했어야지.” “여자니까 좀 더 참아라.”

추석(24일) 명절을 앞둔 가운데 가정 내 성 역할을 둘러싸고 모녀간의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미투(Me Too), 데이트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을 놓고 남녀 성(性) 갈등이 격화하는 현상과 별개로 가족 내 세대별로 페미니즘 열풍을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온도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A(여·25) 씨는 20일 경북 포항에 거주하는 어머니로부터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집에 일찍 내려와 일손을 거들어라”란 통보를 받았다. A 씨는 아직 대학생인 오빠도 서울에 있는데 딸이니까 솔선해서 일손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강권에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그는 “가정에서 딸이 더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특히 가장 딸을 잘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어머니가 오히려 딸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반면 A 씨의 어머니는 “역할을 잘 나누면 좋겠지만, 꼭 5대 5로 성 역할을 칼같이 구분하는 것을 미덕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B(여·32) 씨는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에서 상사로부터 “옷을 짧게 입고 다니면 몸이 차가워져 출산할 때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B 씨는 불쾌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이 얘기를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윗분이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일 테니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가 스스로 처신을 잘하고 다니면 된다”는 말을 듣고 언쟁을 벌였다.

가정에서의 모녀 갈등은 공개 장소에서도 표출됐다. 지난달 30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마련한 ‘보라! 가정폭력은 왜?’를 주제로 한 토크 콘서트에서 일부 청중은 “가정에서 폭력이나 부당한 일이 있어도 어머니와는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만 커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전문가에게 대책을 물었다. 변현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본부장은 “여성들이 본인의 고충을 가장 공감할 것으로 기대하는 어머니와도 의견이 달라 갈등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