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대표 출신 운동능력 탁월
입문 3년 만에 언더파 작성
실력 급성장 비결은 ‘비거리’
한창때 270m 프로선수 뺨쳐
베스트 5언더·홀인원 2차례씩
“골프는 멘털·체력·기술 順…
다시 태어나면 골프선수 될 것”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 이진수(54) ㈜제이에스매니지먼트 대표는 프로 뺨치는 골프 실력을 갖췄다. 베스트 스코어가 5언더파 67타인 이 대표는 최근 라운드에서 3언더파를 쳤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에서 국내 최고 테니스 축제 KEB하나은행 코리아오픈 테니스 개막 하루를 앞두고 대회 준비로 분주한 이 대표를 만났다. 올해 15년째를 맞는 코리아오픈에서 이 대표는 2004년부터 유치에서 운영까지 총괄하는 토너먼트 디렉터를 맡아왔다.
이 대표는 1998년 골프를 시작했다. 이 대표가 한솔 테니스팀 감독 시절,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골프를 추천했다. 당시 테니스협회장을 맡은 조 회장은 국내는 물론 미국의 테니스계 인사들과 함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프렌드십 매치를 열곤 했다. 양 팀 회장이 2만5000달러를 걸고 테니스와 골프 맞대결을 펼치고 이긴 팀이 이를 자선기금으로 전달했다. 이때 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앞으로 골프에도 출전하라고 권유했다. 때마침 한솔그룹이 운영하는 강원 원주 오크밸리골프장이 문을 열면서 연습과 실전 라운드를 하며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첫 라운드에서 105타를 쳤다. 경기 용인의 태광CC에서 싱글 핸디캐퍼인 테니스계 선배들이 이 대표에게 “머리를 얹어 주겠다”며 동반했다. 선배들은 홀마다 1점씩 모두 18점을 받고 이 대표를 내기에 끼웠다. 이 대표는 그러고 2년도 안 돼 70대 스코어에 진입하더니 1년 후에는 언더파를 기록할 만큼 일취월장을 거듭했다.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많기로 소문난 테니스계에서도 이 대표의 골프기량은 A급이다. 이 대표는 5언더파 67타를 2차례 기록했다. 경북 문경CC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메달리스트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해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CC 서코스에서도 67타를 쳤다. 역시 버디 6개와 보기 1개였다.
“매년 언더파를 치는 게 당면 목표”라는 이 대표는 올해도 2∼3언더파는 줄곧 쳐왔다. 퍼팅이 잘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언더파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의 언더파 비결은 ‘월등한 비거리’가 첫 번째 요인이다. 90대 정도의 타수를 칠 때는 거침없는 스윙으로 260∼270m를 보내기도 해 가장 많이 나갔다고 한다. 이때는 프로골퍼들과 쳐도 더 많이 나갔다. 요즘은 거리가 줄어들어 평균 250m 전후를 보낸다고.
이 대표 장타의 밑거름은 임팩트. 이 대표는 “백스윙은 중요하지 않고 임팩트부터 폴로스루로 이어져 ‘뻗어 치는 스윙’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흔히 주말골퍼들은 백스윙은 크지만 정작 임팩트 이후 스윙을 접기 때문에 거리 손해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테니스 역시 라켓을 쭉 뻗어줘야 하듯이 골프에서도 임팩트 이후 공을 앞으로 계속 끌고 가야만 공 스피드가 빨라져 거리를 더 보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인-아웃 스윙궤도를 치면 폴로스루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에 이 동작을 익히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2년 전 아내에게도 골프를 직접 지도, 80대 스코어를 치는 ‘에버리지 골퍼’로 변신시켰다. 경남 마산고 재경 골프모임 총무를 맡은 이 대표는 고교동창 골프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대표의 홀인원은 지금까지 두 차례. 첫 홀인원은 경기 군포의 안양CC에서, 가장 긴 파 3인 13번 홀에서 작성했다. 벙커 바로 뒤에 핀이 꽂혀 있었지만 170m 거리에서 5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그린에 한 번 튕긴 뒤 홀로 들어갔다. 이후 9홀짜리 퍼블릭골프장인 경북 김천CC에서는 110m 거리에서 홀인원했다. 정규코스가 아니어서 패를 받지는 못했다.
이 대표는 “나이 80을 넘겨서 테니스와 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건강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테니스는 유산소 운동인 데다 체력소모가 많지만 가장 권하고 싶은 좋은 운동”이라면서 “테니스는 혼자 할 수 있어 운동량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반대로 골프는 비즈니스나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제격인 데다, 매너를 중요시하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지켜야 한다”면서 “지키는 운동으로서의 장점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만일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테니스가 아닌 골프선수가 되고 싶다”며 “골프가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아 테니스 연습하듯 골프를 하면 성공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 대표는 “골프는 한 달 만에 나가도 샷을 제대로 할 수 있지만, 테니스는 어림없다”면서 “그래도 골프를 잘하려면 멘털이 강해야 하고 그다음이 체력, 기술 순”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차례 연습장에 가서 스윙을 점검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라운드 전날은 연습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이 대표는 요즘도 유연성을 기르는 요가나 스트레칭을 통해 근력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고, 집에서는 아령으로 1∼2시간씩 몸을 단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중학교 시절 테니스를 시작해 마산고-성균관대를 거쳐 1989년 국가대표까지 됐다. 이 대표의 선수 생활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노력하는 선수였다. 1994년 지도자 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대표는 매년 4대 그랜드슬램을 참관해 세계테니스 흐름과 대회 분위기, 체계 등을 익혀왔다. 이렇게 쌓아 온 이 대표의 인적 네트워크가 코리아오픈을 개최하는 데 든든한 자산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동호인 대회로 4000명이 출전하는 아디다스 테니스대회도 7년째 맡고 있다”면서 “앞으로 제2, 제3의 정현을 육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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