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이 대이동하는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고 국내 언론은 하나같이 평양에서 전개된 남북 정상회담 소식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9일 KBS가 남북 정상회담 특집을 위해 전체 뉴스 아이템 32개 가운데 25개를 남북관계의 것으로만 편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청률은 평소의 12∼13%보다 낮은 11.4%에 불과했다니, 국민이 ‘평양의 정치 쇼’를 외면한 셈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계획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한민족의 운명과 직결되는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 국민이 이렇게 외면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는, 대부분의 언론 매체가 서해 북방한계선(NLL)까지 무력화시킨 남북회담 결과에 대한 균형 있는 심층 분석이 없이 이념적인 정치 선전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의 삶이 너무나 궁핍하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인들은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나마 싸움을 하겠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끝없이 일어나는 정변이나 다름없는 사건들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살기가 너무나 어려워 수많은 어린아이를 강제 동원해 펼치는 군무(群舞) 속 평양의 ‘정치 쇼’를 바라보고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당장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먹고 살기 힘든 탓이다.
물가가 치솟고 실업률이 외환위기 이래 최대라는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정치적 ‘도박’으로 점철된 말 잔치와 유희가 난무(亂舞)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과 높은 세금 그리고 치솟는 물가 등으로 서민들의 생활은 날로 핍박해지고 암울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청년 실업자는 추석이 돼도 부모님을 찾아뵙기가 부끄러워 귀향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계절의 축제일인 추석이 없다. 인류학적으로 추석은, 뜨거운 여름 동안 가꾸어온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기쁨을 나타내며, 자연의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축하하는 계절 의식(儀式)이다. 거두어들일 게 없고, 삶에 불안한 시간밖에 없다면 추석이라는 축제일은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고 박탈감과 소외감만을 느끼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성(一聲)으로 제일 먼저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벌써 취임 후 2년차이지만, 실업 문제는 전 정권 때보다 더 심각하다. 눈에 보이는 해결책은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게 고작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북쪽만을 쳐다보고, 실업 상태로 전전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고향도 못 가는 많은 젊은 실업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국민은 말한다. 대통령의 진정한 추석 선물은 ‘실제적으로 종전선언’이나 다름없다는 ‘평양선언’이 아니라, 서민을 먹고 살게 만들어 주는 일자리와 내 집 마련을 위한 현명한 주택 정책, 그리고 물가 안정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느 시인이 추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듯이, 고향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것이다.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어도 배고픈 사람아! 너무 서러워할 것은 없다. 저 추석 달만은 그대들 머리 위에도 창창히 빛나고 있지 않은가.’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은 ‘달’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지는 어른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기 위함이다.
지금 많은 국민은 문 대통령이 백두산에 올라가 눈 아래에 있는 평양만 보고 빈약하고 초라한 추석의 ‘밥상머리에서 NLL을 걱정하는’ 남쪽의 그늘진 땅은 못 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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