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사장賞 박소현

사랑하는 할머니, 장날이면 따라나서 양손 가득 뻥튀기를 쥐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흩날리는 낙엽이 무서워 품에 꼭 안겨 울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답니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는 폭풍같이 쏟아지는 비바람에 야단법석이었지만 저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스미어 오는 그리움과 익숙함에 오히려 편안해졌답니다. 폭풍우가 치는 날이면 할머니와 함께 천둥소리를 좇아 창가에 앉아 수박을 썰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니까요.

철없게도 그런 순간들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저는 할머니의 그토록 따스했던 말씀과 무거웠던 사랑, 그리고 함께했던 모든 추억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말았어요. 7년 전 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강원도에서의 가족 여행 마지막 날 밤이었어요. 낮에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뛰어놀다 발목을 다친 저는 이후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잔뜩 심술이 났었죠. 제가 할머니 댁에서 잘 때면 항상 어두운 밤이 무서워 옆에서 잠드신 할머니를 깨워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던 것을 기억하세요? 그날 밤도 어김없이 응석을 부리며 할머니를 깨웠어요. 할머니께서는 그런 저를 살며시 이불 밖으로 나오게 하셨고 우리는 가족들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펜션 밖으로 나갔죠. 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드는 방법과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별자리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까지 알려주셨지요.

장대비가 내리던 새벽, 눈물 젖은 부모님의 목소리에 잠이 깨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음을 알게 된 저는 처음으로 깊고 깊은 충격에 빠져 그 속에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고 방황했어요. 물밀 듯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어요. 할머니께서는 절대로 제가 하루하루를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 슬퍼하고만 지내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 거라고 깨닫게 되기까지는 아주 힘들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저는 이제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께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더 노력하여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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