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과 로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군사 합의’에 대해 유엔군사령관도 겸할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비행금지구역 지정과 서해 평화수역 설정 등 합의에 내포된 심각한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타당하고 예상도 됐던 일이다. 한국 방위는 물론 주한 미군·유엔군의 작전까지 책임질 지휘관이라면 응당 그런 문제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지난 25일 미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모든 활동은 유엔군사령부 소관”이라면서 “모든 것은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중재·판단·사찰·집행돼야 한다”고 증언(證言)했다. 나아가 “(남북 간 평화협정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정전협정을 무효화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미 외교협회(CFR) 연설에서 “재래식 무기로 인한 군사적 긴장 완화는 남북 간 문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핵 무력만 미·북 문제일 뿐, 이를 제외한 재래식 전력(戰力) 문제는 남북 합의로 충분하다는 입장인데 반해, 유엔사와 주한미군 측은 DMZ 내의 모든 군사적 결정에 대한 관할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 제17항은 협정 집행 책임자를 유엔군사령관으로 적시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그 내용도 부적절하지만,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군 당국은 52차례에 걸쳐 유엔사 측과 협의했으나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이브럼스 지명자는 연합훈련 중단으로 준비 태세도 저하됐다고 우려했다. 안보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문 정부는 이제라도 이런 지적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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