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 필요성을 간절한 어조로 강조했다. 70년 전 유엔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고, 6·25전쟁 때는 유엔군을 파견해 북한 침략에 맞섰으며, 지금도 유엔군이 정전협정 집행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는 65년 동안 정전 상황이고, 전쟁 종식은 매우 절실하다”면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들 사이에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드라이브는, 그 전제부터 잘못됐거나 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2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종전선언과 관련,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 대북(對北) 제재에 대해서는 “북한이 속일 경우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 등에 대해서는 ‘불가역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상은 정반대다. 종전선언 문제는, 태평양사령관 출신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종전선언을 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다”고 밝힌 그대로다. 정치적 선언인 것은 맞지만, 주요국 정상들의 합의는 그 자체로 강제성을 갖는다. 미 당국자들도 비공식 석상에서 “다시 선전포고를 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번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제재도 마찬가지다. 이미 중·러는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제재에 ‘구멍’을 내고 있다. 다시 대북 제재를 강화하려고 하면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가진 이들 나라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려는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최근 몇 가지 조치를 불가역적이라고 본 것은 잘못이다. 풍계리 실험장 셀프 폭파는 더 이상 핵실험이 필요 없기 때문에 진행된 쇼이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쇄도 비핵화 조치와 상관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 안보리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를 재확인했다. 북한의 비핵화 움직임은 대북 제재의 결과일 뿐, 김정은의 선의(善意)에 따른 것이 아님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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