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

산부재고 유선즉명 수부재심 유룡즉령 사시누실 유오덕형

산은 높이와 무관하니 신선이 있어야 명산이고, 물은 깊이와 무관하니 용이 있어야 신령스럽다. 이곳은 누추한 방이지만 나의 덕으로 향기가 난다.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누실명(陋室銘)’의 첫 구절이다. 유우석은 일찍이 유종원 등과 함께 정치 혁신 운동에 참가했다가 기득권층의 미움을 받아 지방의 말단 관리로 좌천됐다. 그 고을의 현령은 처음에 그에게 세 칸짜리 집을 주었는데 그가 유유자적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 한 칸 반의 집으로 이사를 시켰다. 그가 여전히 잘 지내자, 이번에는 좁은 한 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시켰다. 반년 사이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하고 집 크기도 갈수록 작아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도리어 ‘누실명’을 지어 집 앞의 비석에 새겼다. 글은 주변의 풍경을 간략히 묘사하고 이곳에서 고아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풍류를 즐기니 제갈공명이나 양웅의 초옥에 비길 만하다고 자랑하고, “군자가 거처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는 공자의 말로 끝맺고 있다. 지방으로 좌천당하고 초라한 집에 살게 되면 위축되기 마련인데 작자의 드높은 기상과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옛 선비들의 집에 대한 관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요즘 집에 대한 첫째 기준은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다. 몇 년 새 서울의 아파트값은 무서운 기세로 치솟고 지방과의 격차도 날로 커지고 있어 지방에 살거나 돈 없는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오지의 누실에 자족하는 유우석의 정신세계는 너무 고원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의 참된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글귀라고 생각한다.

상명대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