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속기의 변신

자동차의 동력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은 엔진(전기차라면 모터)과 변속기다. 엔진의 성능이 좋을수록 적은 배기량으로도 높은 힘을 발휘해 엔진 회전 속도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엔진을 무한정 빨리 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엔진 회전수의 한계 범위 내에서 힘과 연비가 균형을 이를 수 있도록 동력을 전달하는 게 변속기다. 변속기는 엔진이 연료와 산소를 태워 발생시킨 피스톤 운동에너지를 자동차의 속도에 따라 필요한 회전력으로 바꿔 바퀴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수동변속기(MT)에서 자동변속기(AT)로 넘어갔던 변속기는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MT의 강점을 되살린 ‘자동화 수동변속기’가 나오고, 연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무단(無段) 변속기를 장착한 차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등에 쓰이는 전자식 변속기(SBW·Shift By Wire)도 등장했다.

◇수동에서 자동으로, 다단으로 = 자동차 변속기는 중립, 후진은 물론 저단부터 고단까지 주행속도에 맞춰 운전자가 직접 단수까지 조절해야 하는 MT와 주차(P)·후진(R)·중립(N)·주행(D) 4가지 모드만 있고 주행 중 운전자가 저단∼고단으로 조작할 필요가 없는 AT로 나뉜다. AT의 경우 주행상황에서 각 단 변속은 자동차의 변속기 제어장치(TCU·Transmission Control Unit)가 맡는다.

MT는 기어의 직접 마찰을 통해 단을 바꾸기 때문에 동력전달 효율성이 뛰어나다. 변속기 내구성도 AT보다 우수하다. 따라서 경주용 차는 MT를 달고 있다. 스포츠 주행 성능을 강조한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차 ‘벨로스터 N’도 MT를 채택했다. 대신 운전자가 직접 기어를 선택한 뒤 다시 동력을 이어줘야 하기 때문에 클러치를 밟으면서 변속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면 AT는 편리하고 변속감이 부드럽다. 그러나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서 토크컨버터라는 유체를 통해 힘을 전달하고, MT보다 부품 수가 많고 구조도 복잡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효율성을 높이려고 변속기 다단화를 추구해 왔다. 다단화되면 각 단 사이에서 구동력을 제어하는 차이가 작아져 주행감도 부드러워진다.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급 브랜드 자동차들은 9∼10단 변속기를 달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제네시스 브랜드 등에 8단 이상 변속기 채택률을 높이고 있다.

◇자동화 수동변속기 = MT의 효율성과 AT의 편리함을 결합, 변속기 내부에 모터 등을 활용한 장치를 추가한 자동화 수동변속기가 유행하고 있다. MT를 기반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스포티한 주행감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운전자가 클러치를 밟으며 기어를 바꿔 넣을 필요는 없다. 변속레버 형태도 일반 AT와 같다.

폭스바겐그룹의 DSG, 포르쉐의 PDK, 현대·기아차의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DCT) 등이 대표적인 자동화 수동변속기다.

특히 DCT는 2개의 클러치를 적용해 홀수 기어 담당과 짝수 기어 담당을 나눴다. 클러치 하나가 단수를 바꾸면 다른 클러치가 곧바로 다음 단에 기어를 넣는다. 사람이 조작하는 것보다도 속도가 빠르고, 일반 MT에 비해 변속 소음과 충격도 작다. 다만 일반 AT보다는 변속충격이 클 수 있다. 현대차는 2011년 출시된 1세대 벨로스터에 전륜 6단 건식 DCT를 처음 장착했다. 2013년에는 7단 DCT를 개발했고, 현재는 더 높은 토크에 대응할 수 있는 습식 클러치 DCT도 개발 중이다.

◇무단 변속기 = 연비가 뛰어난 무단변속기(CVT·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는 상대적으로 동력성능을 높이 요구하지 않는 경차 등에 주로 적용돼 왔다. CVT는 원뿔 모양의 풀리(Pulley·벨트를 걸기 위해 축에 설치하는 바퀴) 2개를 체인벨트로 걸어서, 양 풀리의 둘레 차이에 따라 변속시키는 방식이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CVT가 오히려 일반 AT보다 가속이 빠르지만, 차 속력과 엔진 회전수 불일치로 인해 운전자 입장에서는 출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CVT의 연비 효율 장점은 살리면서 주행성능과 내구성을 강화하고 소음을 줄인 차세대 무단변속기 스마트스트림 IVT(Intelligent Variable Transmission)를 개발했다. 운전자가 변속을 체감할 수 있는 자동변속기 모사 변속 패턴과 매뉴얼 모드를 통해 AT 또는 DCT와 유사한 느낌의 빠르고 절도 있는 변속감을 구현해냈다. 신형 K3와 아반떼 페이스리프트 등이 이 변속기를 탑재하고 있다.

◇전자식 변속기 = AT는 운전석의 기어박스와 변속기가 강철 케이블로 연결돼 있다. 이와 달리 최근 탑재되고 있는 전자식 변속기, 즉 SBW는 변속기가 물리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고 스위치를 눌러 전기를 연결했다 끊었다 하는 개념이다. 현대차의 후륜 8단 자동변속기가 최근 SBW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SBW 방식에서는 제네시스 G70처럼 P를 변속레버에서 떼어내 별도 버튼으로 만들 수 있다.

전기차의 경우 SBW만 탑재된다. 사실 전기차에는 ‘변속기’라고 할 수 있는 기계 뭉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터가 엔진과 변속기의 역할을 모두 대체하기 때문에, 물리적 연결이 필요한 일반 변속기를 장착할 수 없다. 전기 신호를 보내 모터를 제어할 뿐이다. 1단, 2단 등 단수 개념도 없다. 기아차 니로 EV(전기차)의 경우 변속레버가 아예 없고, 다이얼 형태의 SBW가 적용돼 있다. SBW는 빠르고 편하게 조작할 수 있으며, 고급스러운 느낌도 줄 수 있다. 변속기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없기에 차량 하부 설계나 디자인에 있어서도 자유도가 높아진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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