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생활·고액 → 중액 통폐합
판사들‘형평’내세우며 도입
4개월 처리건수 30%나 급감

법조계 “잠자는 사건 늘면서
‘재판받을 권리’국민만 피해”


전국 최대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이 재판부들을 통폐합한 뒤로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중앙지법의 사건처리가 더뎌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모든 사건을 유형별 구분 없이 골고루 나눠 갖자는 판사들의 ‘기계적 형평주의’ 탓에 캐비닛 안에서 잠자는 사건이 늘어나고, 결국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문화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법 민사 중·고액 단독재판부들이 통폐합된 올해 3월 이후 7월까지 중액단독재판부의 총 사건처리 건수는 1만434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45건이 급감했다. 중앙지법의 사건 처리가 느려졌다는 일각의 우려가 실제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중앙지법은 올해 초 사무분담을 재편성해 생활형분쟁집중처리부(생활형단독)와 고액단독재판부를 없애고, 전부 중액단독재판부로 통폐합했다.

생활형단독이란 “빚을 갚으라”는 사법보좌관들의 지급명령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에 따른 본안소송들을 집중적으로 담당한 재판부다.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에서조차 이의신청이 워낙 많다 보니 특정재판부들이 이를 전담하도록 하는 대신, 나머지 재판부로 하여금 중요·복잡한 사건들을 원활하게 심리할 수 있도록 했다.

판사들이 이 같은 ‘선택과 집중’ 방침을 버리고 ‘평등주의’로 나서자 사건처리가 더뎌졌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법원 일각에서는 “생활형단독 같은 특정 재판부가 ‘특혜성 보직’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자 이를 폐지했다”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그만큼 캐비닛에 처박힌 사건 수가 늘어나고 송사가 늘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중앙지법 관계자는 “민사 중·고액 단독재판부 숫자가 지난해 59개에서 올해 51개로 줄어들면서 통폐합은 불가피했다”면서 “초반에 사건 배당 등 절차문제로 처리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재판부별 평균 사건처리율은 점차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당초 생활형단독재판부의 월평균 사건처리건수를 보면 4개 재판부가 최소 135건에서 최대 360건까지 도맡았다”면서 “일당백을 하는 재판부를 없앤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중앙지법은 지난 8월 형사단독재판부에서도 약식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에 따른 정식재판 전담부를 없앴다. 또 다른 변호사는 “단순 사건들을 특정재판부에 몰아줘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대신 복잡한 사건들의 경우 변론을 자주 열어 심리하자는 ‘민사 구술주의·형사 공판중심주의’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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