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임원급 증인 소환에 합의
1조 목표에 달성액 380억 불과
“의견 무시…일방적 추진해놓고
애꿎은 기업만 족쳐” 부글부글

준조세 성격 기부 강요한다면
‘제2 미르·K스포츠’ 불씨 우려


“제2의 미르·K스포츠 재단 사태를 만들려는 것인가!”

‘농어촌 상생협력 기금’ 기부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국회가 5대 그룹 핵심 관계자를 국감 증인으로 부르기로 잠정 합의하자, 재계를 중심으로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재계 및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오는 10일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 자리에 삼성전자·㈜SK·㈜LG의 경우 사장급, 현대자동차·롯데 지주의 경우 전무급을 각각 증인으로 부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통과 조건으로 민간기업·공기업 등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아 해당 기금을 조성키로 했으나, FTA 혜택을 누린 민간기업의 기부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정운천(바른미래당)·김정재(자유한국당) 의원이 증인 신청을 한 결과다.

재계는 국회 농해수위가 5대 그룹 핵심 관계자 직급을 맞추기 위해 최종 조율하고 있으나, 이들 관계자를 모두 증인으로 부르기로 합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5대 그룹은 국감을 앞두고 자칫 ‘괘씸죄’를 사면 국감장에서 집중포화를 당할 수 있어 공식적인 견해 표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으나, 이를 지켜보는 재계 관계자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치권이 기업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해당 기금을 조성키로 해놓고, 목표 달성이 요원하자 민간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재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에 준조세 성격의 자발적 기부 책임을 떠넘겨 놓고 흐지부지되자 애꿎은 기업인만 불러 족치겠다는 발상”이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국회·정부는 민간기업과 공기업으로부터 1년에 1000억 원씩 10년 동안 기부를 받아 총 1조 원을 조성키로 했으나, 현재 380억 원가량만 모은 상황이다. 이 중 민간 기업의 기부금은 5억 원에 불과했는데, 박근혜 정부의 요청으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부했다가 줄줄이 ‘뇌물죄’ 혐의로 기소당한 기업인들이 큰 충격에 빠진 후폭풍인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 강요로 막대한 기부금을 내고도 뇌물죄 혐의까지 뒤집어써 기업인들이 아직도 그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면서 “정치권이 국감장에 불러 ‘호통치기’와 ‘면박 주기’로 기부를 강요하고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되면 결국 ‘미르·K스포츠 재단 사태’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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