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의’없이 ‘격’지켜
현대적이면서 전통적
늘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전통회화에 지두화(指頭畵)라는 것이 있다. 지묵(指墨), 지화(指畵)라고도 하는 기법으로 손가락 등 손의 일부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20세기 초 잭슨 폴록(1912~1956)이 손과 붓을 캔버스에 닿지 않게 물감을 흩뿌려 그림을 그리는 드리핑으로 유명해졌다면 지두화는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앞서는 혁신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대개는 손가락이나 손톱, 손바닥, 손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데 전통적으로 붓을 사용하는 모필화와 달리 파격적인 미를 드러내는 데 적합한 독창적인 화법이다.
이런 화법은 새롭고 남다른 그림을 추구했던 8세기 당나라의 즈앙차오(張操·735~785)가 처음 시도해 18세기 초 청나라 때 카오치페이(高其佩·1662?~1734)에 의해 크게 성했다고 한다. 이미 1720년 연경에 다녀오면서 지두화와 손톱에 먹을 묻혀 그린 조화(爪畵)를 보고 이를 가져와 주위에 선물한 것을 보면 일찍이 우리에게도 전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조선 후기 문인 화가들은 지두화의 개성적이며 자유로운 양식과 간결하고 세부가 생략되는 과감한 묘사에 빠져들었고 18세기의 강세황(姜世晃·1713~1791), 허필(許珌·1709~1761), 심사정(沈師正·1707~1769) 등이 그린 지두화는 붓의 부드러움이 덜 하고 선이 상대적으로 둔탁해도 날카롭고 둔중한 필선은 모필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느낌을 준다. 또 고상하거나 아담스러운 느낌은 없어도 전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영·정조시대 대사간을 지낸 윤제홍(尹濟弘·1764~1840)은 속은 깊고 겉은 야일(野逸·겉치레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한 그림을 짧고 구불거리는 지두선을 써서 대상의 본령을 놓치지 않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조선의 고흐라는 최북(崔北·1712~1760?)도 지두화에 일가를 이루었다. 소치 허련(許鍊·1809~1892)도 갈필기법의 독특한 지두화법을 완성했다. 이 외에도 ‘취해 미친다’는 뜻의 취전이란 호를 지닌 오기봉(吳起鳳·생몰년미상)도 지두화에 능했다. 이런 전통은 1920년대에 활동한 화가 황 씨 4형제 중 둘째인 황성하(黃成河·1891~1965)가 ‘대교약졸’의 ‘우청양식’을 정립해 지두화의 명맥을 이어 나왔다.
이렇게 몸으로 느끼는 것을 ‘체현’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이들 작품은 화면의 질감, 그 자체를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즉물적이다. 물론 오치균의 경우 구체적인 특정 사물이나 대상을 그리고 있어 화면 자체에서 촉감을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각기 다른 유백색 달항아리 표면에서 각각 다른 질감과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같지만 미세하게 다른 그리고 그 미세함에서 커다란 다름을 찾아내거나, 그 다름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시각적 촉감을 만끽하는 방법이다.
박영남의 회화가 행위의 반복과 쌓임을 통해 명징한 운동감을 지닌 촉각적 화면을 만든다면 김춘수의 회화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동적이며 회화적이다. 그는 신체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화면을 채워 넣으며 회화의 원초적 순수한 상태를 지향한다. 이렇게 파격은 새로운 예술을 낳는다. 하지만 혁신과 변화를 위해 격의(隔意) 없는 것은 좋지만 격(格)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몸을 실은 지두화는 ‘격의’ 없이 ‘격’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이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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