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 내부전산망 檢 비판 “법원에 우위 목적 수사 아닌가” 檢 “특별대우 해달라는 얘기냐”
양승태 자택 압수수색 또 불발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놓고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폭발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이래 처음으로 한 현직 법관이 8일 검찰 수사 방식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검찰은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검찰에 대한 부탁과 법원의 각성’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사법농단 수사를 4개월 가까이 이어가고 있는 검찰을 향해 비판을 가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사는 불러서 조지고 판사는 미뤄서 조진다’는 말이 있는데, 검찰 수사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하기만 하면 돼)”라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최근 한 법원 사무관이 검찰에 소환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긴 시간 동안 동일한 내용을 계속 되묻는 식의 조사를 받았다는 등 법원 구성원들이 사법파동으로 인한 검찰 수사에서 많은 고초를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요즘 말로 ‘답정너’를 경험하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에 대해 공정하고 절차에 위법이 없는 수사를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심정의 발로”라면서 “혹여 이번 수사가 검찰 조직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법원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잘못된 목적의식 등에 따른 수사가 아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은 최근 들어 50명이 넘는 전·현직 법관에 대한 검찰 소환이 잇따르자 법원 내부에서 불만이 고조되는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법원 내에서는 “직접 소환조사를 겪고 보니 그간 밀실에서 이뤄진 검찰 취조와 진술 조서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 고위 법관은 “이제 죽은 활자는 법정에서 더욱 힘을 잃게 될 것”이라면서 “이런 식의 검찰의 조서 작성 관행을 진정한 적폐로 청산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다른 판사도 “수사기법이라는 명목으로 반복해서 물어보면 나중에는 참고인이나 피의자가 지쳐서 검찰이 원하는 답을 사인해주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김 부장판사도 글의 말미에서 “판사들은 앞으로 공판정에서 피고인이나 증인의 진술을 듣는 수고스러움이 싫어서 그들의 살아 있는 법정에서의 말보다는 검사가 적은 조서의 그 화석 같은 글에 더 의존하며 유죄의 심증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되새겨야 한다”면서 “여전히 조서중심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현실을 진정한 공판중심주의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전직 대통령들도 오전에 들어와서 밤까지 조사를 받는데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법원에 양 전 대법원장의 현재 주거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영장전담판사가 ‘주거·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며 기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자료 제출을 거부한 현직 부장판사(전직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무실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이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