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지난주 취임식에서, 2020년 시행으로 예정돼 있던 고교 무상교육을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대다수 국민에게 월 13만 원, 연간 156만 원의 가처분소득이 주어지는 셈이라 귀에 솔깃할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맞장구쳐 고교 무상교육을 앞당기는 문제가 이미 사전 조율된 사안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인 포용적 국가 건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정책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유 장관도 직접 국민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매우 필요하고, 준비가 돼 있어 앞당겨 시행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교 무상교육의 조기(早期) 시행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소요 재원 마련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아 설익은 상태로 재정 당국과 기초적인 협의조차 되지 않은 정책이다. 고교 무상교육 실행을 위해 교육부가 발주한 정책연구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 행정적 준비도 전혀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장관이 도입 시기를 내년으로 앞당기겠다고 함에 따라 교육부는 서둘러 정책 로드맵을 결정하고 시·도 교육청과 논의하는 한편 추가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
어차피 할 고교 무상교육이니 연간 2조 원에 이르는 비용이 뭐가 대수겠는가 하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책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 재정은 나라 전체의 필요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공유자원(common resource)으로 모든 사회단체와 용도에 대해 똑같은 원칙을 갖고 접근 권한을 줘야 한다. 정치인의 이익을 위해 고교 무상교육의 실시 시기에 대한 결정에 정상적인 검토 절차를 생략하고 재정 배분을 하게 되면, 재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모든 사회단체와 재정 소요 정책에 동일한 예외를 인정해 줘야 한다. 모든 사업에 재정을 배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회단체의 요구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은 사라지게 된다.
다음으로, 이번 사안은 보다 근본적으로 정책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정부 관료 체제와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등 주요 이해관계자 간의 논의는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소비자로 상정된 시민과 직접 거래하려는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판단된다. 소비자로서의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조직의 가격을 낮추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국가와 행정 체제를 시장화(市場化)하고, 바람직한 정책 결정을 위한 정치행정 체제를 정치적 간섭으로써 훼손하는 모습으로 이해된다. 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다양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의 대화 및 숙의를 통한 집단지성(集團知性)에 의한 정책 결정 체제를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 극대화하는 포퓰리스트의 전략으로 파악된다.
이런 식의 정책 결정으론 혹 한두 번은 더 나은 정책을 채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진 몰라도, 결국은 사회 주요 구성원들과의 숙의를 통해 형성된 정책에 비해 품질 낮은 정책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은 CEO 리스크에 의해 우량기업 전체의 가치가 훼손되듯이, 정치인 리스크에 의해 국가의 권위, 정부 전체와 공공정책의 가치 및 정당성이 상처를 입은 사례다. 국민은 몇만 원에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준 낮은 사람들이 아니라, 원칙과 가치에 기반을 둔 정부와 정책을 바라는 성숙한 시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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