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정치학

오는 10일부터 제주에서 개최되는 국제관함식에 일본 측이 자위함에 전범기인 욱일기(旭日旗)를 달고 오겠다고 고집해 며칠간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런데 지난 5일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번 행사에 자위함을 보내지 않겠다고 공식으로 전해 와 논란은 일단 진정됐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요청대로 일장기와 태극기만 달고 관함식에 참가하는 게 가장 바람직했다. 앞으로는 독일이 나치의 상징물을 공공장소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한 법을 제정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욱일기를 비롯한 일제의 상징물을 한국 내에서 쓰지 못하게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확히 20년 전인 1998년 10월 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했다. 이때 일본은 과거 한국에 대해 가해자였음을 인정했고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를 한국에 사과했다. 이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이뤄지지 않았던 일본 측 사과의 공식 문서화였다. 이후 한·일 양국은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할 것을 다짐했고 한국은 일본 문화를 개방했다.

그 후 일본 영화 등이 한국에 들어왔고 케이블TV에서 일본 방송도 볼 수 있게 됐다. 공공장소에서는 일본어 사용이 허용됐고, 지하철·열차 등에서 일본어 안내 방송이 시작됐다. 또, 일본에는 한류(韓流)가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한때 한국 드라마, K팝 등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으로 도쿄 신오쿠보에 코리아타운이 생겨 각지에서 일본인들이 쇼핑 등을 하러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편,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한 일본 대표단은 평양선언을 발표해 북·일 수교를 추진할 것을 선언했고, 일본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사과했다. 이런 평양선언의 계기는 1998년 10월 8일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었다.

그런데 그 후 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이 훼손됐다. 일본은 2001년 3월 ‘새 역사교과서’(후소샤)를 검정 통과시켜 역사 왜곡을 허용했고, 같은 해 8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한·일 파트너십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본의 행태로 일어난 한·일 간의 불화는 2002년 월드컵대회 공동 개최로 일시적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2005년 3월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다시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파트너십 선언으로 과거 청산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파들이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워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를 오히려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혐한 시위가 본격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식이 있는 일본 시민들이 혐한 시위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어 혐한 세력을 몰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파트너십 선언 이후 한·일 관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자위대의 욱일기 문제도 그중 하나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는, 특히 일본이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 정신에 따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가해자였고 한국이 피해자였다는 파트너십 선언이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일본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독일은 유럽과 유대인에 대한 가해자였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주변국들에 도리를 다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몇 번이나 사과했고, 그것을 공식 문서로 만들기도 했지만, 다시 과거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행동을 해 왔다.

오늘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이 그 정신을 되새겨 진정한 우호 관계를 재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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