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섭은 1929년 경기 강화군 화도면(현 인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서 태어났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경기뱃노래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한국적 가락을 접했고, 일찍부터 집 근처 병원에서 흘러나오는 ‘할렐루야’ 등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서양음악을 익혔다. 인천중학교 밴드부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며 여러 관악기의 연주법을 배웠고, 1945년 광복이 돼 서울로 온 후 경복중학교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만났다. 밴드부 활동을 하며 관악기 연주법을 배운 것은 훗날 그가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경복중학교 시절 피아노를 배운 것은 새로운 길을 여는 전환점이 됐다. 피아노를 빠른 속도로 배워 재능을 보였지만 피아니스트를 꿈꾸기에는 손가락이 짧아 작곡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당시 이화여대 임동혁 교수에게 화성학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화성학 수업은 오래지 않아 결실을 보았다. 2년 동안 작곡이론을 사사하며 틈틈이 곡을 써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949년 6월 4일 18세의 나이로 인천 외국문화연구관에서 피아노 모음곡, 피아노 환상곡, 가곡, 바이올린곡으로 첫 작곡 발표회를 열었다.

이후 그는 1949년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해 김성태 교수의 제자로 공부하며 조지훈의 시에 곡을 붙여 ‘마을’ ‘도라지꽃’ 등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학생 작품 같지 않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보였다.

그는 1953년 결혼 기념으로 가곡집 ‘소라’를 출판했다. 이 작곡집은 최영섭에게 미국의 줄리아드 음악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가곡집 ‘소라’를 본 줄리아드 음악대학 학장이자 작곡가인 윌리엄 슈만이 최영섭을 특별 장학생으로 초청한 것이다. 그러나 신혼이었던 그는 음악적 욕심보다는 가정에 대한 책임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줄리아드 음악대학에 가지 않았다.

1958년 최영섭은 KBS 라디오 프로그램 ‘이 주일의 노래’를 통해 다시 한 번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이 주일의 노래’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국민에게 신작 가곡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시인들의 시에 작곡가를 선정해 곡을 만들어 연주 녹음을 한 뒤 1주일 동안 하루에 6번 정도 방송했는데,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듣던 그 시대에 ‘이 주일의 노래’를 통해 들려주는 노래들은 가곡 대중화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최영섭은 ‘이 주일의 노래’에 작곡가로 위촉돼 많은 곡을 만들어 국민에게 들려주었다. 그 당시 그는 최고의 인기 작곡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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