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탈북 작가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서울시청 본관 로비에서 열린 평양건축사진 전시회를 찾았다. 영국의 건축디자인 평론가 올리버 웨인라이트의 작품으로, 가장 최근의 평양 모습을 찍은 것이다. 올해만 세 차례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때문인지 요즘 언론에 비치는 평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밝고 화려한 것뿐인데, 사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1968년 10월, 평양시 대동강구역 소룡동에서 태어났다. 농촌 지역까지 포함한 평양의 면적은 서울의 3배에 이르지만, 시가지 면적은 서울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는 약 250만 명.

평양 건설의 최전성기는 1980년대다. 고려호텔을 비롯해 김일성광장 현대화, 주체사상탑, 개선문, 문수거리, 평양교예극장, 광복거리,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청춘거리, 동평양대극장, 청년중앙회관, 5월1일경기장 등이 이 시기에 건설됐다.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한 이후 평양 건설은 잠정 중단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이후 전대미문의 자연재해(가뭄과 홍수) 등으로 인해 발생한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다.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북한에서는 지금 지방 주민들에 대한 국가의 식량 공급은 전혀 이뤄지지 않지만, 평양시민들은 정상의 60∼70%쯤 공급받는다. 백화점·식당·시장·상점·식량공급소 등이 평양에 많아도 겨우 운영된다. 평양 시내의 상점과 식당은 모두 외화를 받는 상업시설인데 이곳을 찾는 이용객은 간부들이나 외국에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로, 평양 시민의 10% 정도 된다. 나머지 90%는 시장이나 비싸게 상품을 파는 국영상점에 의존해 살아간다.

평양에 있는 국제공항이나 지하철, 국제호텔, 국제영화관, 국제경기장 등은 지방엔 없다. 심지어 고급(외화) 백화점이나 30층 이상 고층 아파트도 지방에는 없다. 그러니 평양과 지방의 경제·생활 수준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마치 별세계와 같은 이런 평양에 지방 주민들은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다. 평양으로 향하는 도로·철도·강변 등에 단속 초소가 있다.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것도 평양시 공안 당국의 까다로운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 이유는 ‘혁명의 수뇌부(최고지도자)가 있는 수도 평양을 간첩과 적대세력(반동분자)으로부터 철옹성같이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실제로는 지방 주민들이 대거 평양으로 몰려와 반정부 시위라도 할까 봐 차단해 놓은 교묘한 통치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평양 시민에게 가장 큰 영예는 ‘위대한 수령을 몸 가까이 모시고 사는 최고의 영광’이다. 그래서 그들은 평양을 ‘혁명의 수도’ ‘조선의 심장’이라고 부른다. ‘수령의 크나큰 사랑’을 누리고 사는 평양 시민들과 수도 구경이 평생소원인 지방 주민들과의 차이는 분명 극과 극이다. 평양 시민은 평양에서 추방되지 않으려고 항상 몸조심·말조심하고, 지방 주민들은 그 평양에서 살고파 죽기 살기로 충성 경쟁을 한다.

전시된 사진을 보면서 다소 놀랐다. 평양 건설의 대전성기인 1980년대부터 노른자위 땅, 공터였던 동평양 문수거리 강변에 현대적 시설물이 들어섰다. 해당화관(대중쇼핑몰), 인민야외빙상장,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 대동강수산물식당 등인데 수령이 인민에게 베푸는 ‘특별한 사랑의 선물’이라고 노동당이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사진을 둘러본 탈북민 아내가 “평양의 낡은 아파트를 보니 가슴이 무척 아파요. 저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인민들은 또 얼마나 고생할까요”라고 한다.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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