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우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무대미술가

조선시대까지 극장 한곳 없었는데
지금 대학로에만 150개 이상 밀집


최초의 연극전문 극장은 ‘동양극장’
현대식 회전무대 갖춘 648석 규모

극장 후진국서 세계적 공연 국가로
양적뿐만 아니라 질적 선진국 돼야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연이 제작되는 국가 중 하나다. 서울의 대학로에는 반경 500m 안에 무려 1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극장이 밀집돼 있고 매일 100개 이상의 공연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극장 수, 공연 수로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못지않다. 연기 관련 전공학과가 개설돼 있는 대학의 수가 70개에 가깝고 거기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중심이 돼 공연, 영화, TV 드라마 등을 만들어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해 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최초의 극장이라면 흔히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극장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사실은 대한제국시대인 1902년에 개관한 왕립극장 ‘협률사’를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을 위해 종로구 신문로의 현 새문안교회 자리에 세운 원형의 2층 극장으로서, 600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주로 전통연희 공연을 올렸으며, 1908년 민간에 임대돼 ‘원각사’라는 극장명으로 재개관돼 한국 최초의 신연극 ‘은세계’가 올려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이라는 타이틀을 다른 경쟁자들이 주장할 수도 있다. 1899년과 그 이듬해에 건립된 ‘아현무동연희장’과 ‘용산무동연희장’이 그들이다. 하지만 그 연희장들이 극장이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시설인가 하는 점은 자료가 없으므로 확실하지가 않다. 만약에 그들이 가설무대 수준이었다면 최초의 극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긴 어렵다. 또 다른 경쟁자가 있다. 서울의 협률사보다 7년이나 앞선 1895년에 설립됐다고 인천시 역사에서 말하는 ‘인천 협률사’가 그것이다. 사업가 정치국 씨가 인천 중구 경동의 창고를 개조해 건립했다는 민간극장으로, 현재의 영화관인 ‘애관극장’의 전신이라고 한다.

극장으로서의 개관과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당시 인천에 근무하던 외국인 목사가 1901년 ‘더 코리안 리뷰(The Korean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1900년에 들어섰을 무렵 이미 인천에는 3개의 영사관, 2개의 극장… 등이 있었다’고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그 후 서울에는 1907년 ‘광무대’와 ‘단성사’, 1908년 ‘연흥사’와 ‘장안사’, 1922년 ‘조선극장’, 1930년 ‘약초극장’ 등 많은 민간 상업극장이 생겨났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동안 ‘명치좌’를 비롯한 많은 일본인 극장의 번영과 대조적으로 조선인 극장들은 일제의 탄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쇠락해갔다.

“최초의 현대식 연극 전문극장은?”

‘동양극장’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들도 깃이 있는데 4000년 문화사를 가졌다면서 우리의 마음을 모아 둘 극장 하나 갖지 못하고… 조선사회는 조선연극인들에게 극장을 주어라!’(홍해성) 연극인들의 이러한 절박한 주장에 화답하듯 1935년 무용인 배구자와 남편 홍순언의 노력에 의해 서대문에 ‘동양극장’이 설립됐다. 상하 개폐식의 막 전환 장치와 회전무대까지 갖춘 648석의 현대식 연극 전문극장은 당시 연극인들의 요람이 됐으나 1990년 철거됐다.

“최초의 국립극장은?”

서울이 ‘경성부’로 불리던 시절인 1936년 덕수궁 옆에 건립된 ‘경성부민회관’이 후일 국립극장으로 사용됐다. 현재 서울시의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1800석의 대강당을 중심으로 중강당, 소강당 등을 갖춘 다목적 문화공간이었으며, 1950년에 ‘국립극장’이라는 조직이 설립되면서 첫 국립‘극장’으로 사용됐다. 그 직후 전쟁이 나자 국립극장은 ‘대구문화극장’으로 피란했고, 1957년 환도해 ‘시공관’(옛 명치좌, 현 명동예술극장)을 쓰다가 1973년 남산에 신축된 ‘국립극장’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최초의 소극장은?”

‘원각사’이다. 1908년의 ‘옛 원각사’가 아니라, 1958년 을지로입구에 개관한 306석의 ‘새 원각사’이다. 당시 정부의 공보실장 오재경의 노력으로 경춘철도사무실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해 무료대관을 원칙으로 하는 공보처 소속 관립 소극장을 건립했다.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이 극장은 활발하게 운영되다가 안타깝게도 2년 후 불에 타 사라졌다. 건물로서 최초의 소극장이 원각사라면 ‘실험적 연극운동’이라는 의미로서의 최초의 소극장은 1969년 무대미술가 이병복에 의해 명동에 만들어진 ‘까페 떼아뜨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후 에저또소극장, 실험소극장, 민예소극장, 창고극장, 세실극장 등 많은 소극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의 소극장들은 대부분 기존의 건물을 극장으로 꾸민 것이었는데, 1985년 연출가 임영웅에 의해 신촌에 건립된 ‘산울림소극장’은 최초로 극장을 주목적으로 설계된 건물이었다. 특히, 무대의 3면을 객석으로 둘러싼 돌출무대 형식의 산울림소극장은, 1962년 남산에 세워진 ‘드라마센터’와 함께 극장 형태의 다양성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남다르다.

최초의 오페라극장은? 최초의 뮤지컬극장은? 또 다른 질문도 해 본다. 우리나라엔 왜 조선 시대까지 극장이 없었을까?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최초의 극장이 건립된 ‘극장 후진국’에서 어떻게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공연 제작 국가’가 됐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극장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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