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도 멘털 잃으면 무너져
가르시아 ‘옥튜플 보기’ 수모
케빈 나, 12오버파 범한 적도
예기치 않은 상황 대처가 중요
‘벙커? 멋지게 붙여 파 세이브’
뻔뻔스러울 정도의 배짱 필요
짜증낸다고 해결되는 것 없어
빨간머리 앤의 긍정심 배워야
골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동반자와 어울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기에 동참하는 경우가 있다. 초보자라면 생떼를 써 핸디 몇 점 받아 근근이 버텨보지만 이기기에는 터무니없다. 하지만 구력이 쌓이고 실력이 향상되면서 이기는 횟수가 많아진다. 자신감도 생기고 은근히 내기를 위해 다음 라운드가 기다려진다. 항상 이기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력자를 만나 어이없는 실수나 예기치 않은 일로 패배한다. 실력이 달려 패배했다면 자존심이 약간 상하기는 하겠지만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나 예기치 않은 일로 패배한다면 짜증이 나고 화가 치민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골프도 라운드하다 보면 실수할 때가 많다. 그날따라 벙커나 러프에 자주 빠진다거나 티샷이 해저드로 날아간다. 이상하리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패배했을 경우 대부분은 실수 때문이거나 운이 나빴다고 여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수나 운이 나빠서 진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패배하는 것이다. ‘허 참, 어이가 없네. 왜 이러지!’ ‘오늘따라 꼬이네. 잘 쳤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떨어지다니’ ‘또 벙커에…, 오늘따라 재수가 옴 붙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도면 이미 평정심을 잃은 셈이다. 속으로는 몹시 기분이 상하겠지만,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이번에는…’ 하고 집중해 보지만 결과는 뻔하다. “라운드의 실수나 예기치 않은 일은 곧 잊어버리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듣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프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도 해저드에 빠진다. 벙커나 러프에 빠져 곤욕을 치른다. 재미교포 케빈 나(사진)는 파4 홀에서 16타를 기록해 12오버파인 ‘듀오디큐플(duodecuple) 보기’를 범한 적이 있다.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명인열전’ 마스터스 1라운드 15번 홀(파5)에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는 13타를 쳐 8오버파인 ‘옥튜플 보기’의 수모를 겪었다. 실력이 부족해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니다. 평정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골프에선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일이 자주 발생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일어난 후 그것에 대처하는 양상이다. 그래서 많은 프로가 멘털 강화 훈련을 받거나 심리상담을 받는다. 주말 골퍼도 나름대로 멘털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멘털 강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다. 여유란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참 나, 이런 샷을! 어이가 없네. 내가 이러지 않았는데…’가 아니라 ‘오호라! 벙커네. 멋지게 붙여 파 세이브를 해 볼까!’ 또는 ‘해저드네. 스리 온 원 퍼트를!’이다.
둘째는 배짱이다. ‘그까짓 것’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해 US오픈 3라운드 13번 홀에서 필 미켈슨(미국)은 퍼트한 후 계속 굴러가는 공을 쳐 벌타를 받았다. 그 홀에서 10타를 쳐 6오버파 ‘섹스튜플 보기’를 범했다. 그렇지만 미켈슨은 갤러리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다음 홀로 가는 ‘뻔뻔함’을 과시했다. 미켈슨의 행동은 결코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감정을 그대로 터트리는 것보단 낫다.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든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생각이다. 골프에서 마음에 드는 샷은 그렇게 많지 않다. 프로들도 한 라운드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샷은 손에 꼽을 정도다. 주말 골프는 생각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생각대로 안 된다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빨간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엘리자가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아”라며 불평하자, 앤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라고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골프의 묘미는 바로 앤과 같은 생각일 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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