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지난달 19일 평양에서 채택된 ‘군사 분야 합의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이 안보 원칙과 군비통제의 기본을 무시한 합의서가 내포한 위험성에 대해 호루라기를 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국방부의 해명은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는 형국이다.

공군과 육군의 항공정찰 기능을 위축시키고 동맹국과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비행금지구역, 관측·감시 사각지대를 증대시켜 전방부대의 경계 능력을 제약할 감시초소(GP) 철수,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서울 침투로로 악용할 여지가 있는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민간 개방 추진 등에 합의한 것을 두고 ‘잘한 일’이라 한다면 군사 전문가가 아니다. 특히, 장병들의 피로 지켜온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형해화하면서 서북 5개 도서의 군사적 고립화와 수도권 측방의 전략적 취약성까지 초래할 수 있는 서해 적대행위금지수역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호루라기 소리를 경청하는 것 같지 않다.

군(軍) 당국이 어떤 논리로 해명하더라도 이번 군사합의서는 원론 차원에서 다음 3가지 안보 원칙을 위배한다.

첫째, 공자(攻者)와 방자(防者)의 차이점을 외면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공자인 북한은 항공정찰이나 감시초소가 아예 없어도 무방하지만, 방자에게 있어 ‘눈과 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군사자산인데, 방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합의를 두고 ‘균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째, 전체적인 군사력 균형이 도외시됐다. 북한은 재래군사력에서의 양적 우위에 더해 핵무기, 화생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 분야에서 독점적 우위를 갖고 있다. 한국군은 재래군사력에서 질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을 뿐인데,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제약하는 합의를 두고 군사력 균형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긴 어렵다.

셋째, 군비통제의 기본들이 무시됐다. 군비통제란 군사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력과 군사 태세를 ‘상호 조정’하는 일이지, 결코 군사력을 무조건 줄이고 없애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이, 상호 공격무기를 줄이고 방어무기를 보완하는 것이다. 공자의 공격·도발용 무기들을 그대로 두고 방자의 방어수단과 억제태세를 제약하는 것은 군비통제가 아니다. 군사력의 조정에 있어서도 ‘믿지만 검증한다(trust but verify)’는 원칙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번 합의는 전과가 수두룩한 사람이 ‘개과천선하겠다’고 말했다고 해서 검증 장치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대문의 빗장을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군인이라면 이런 기본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고 불가역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명운을 걸다시피 한 정부로서는 이 합의서가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상생 시대를 열어가는 데 긴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임기가 정해진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가 존재하는 한 안보 원칙에 따라야 하는 군사 문제를 정치외교적으로 처리했다는 후세의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잠시 과속 질주를 멈추고 남북 상생과 안보는 함께 굴러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돼야 한다는 지적, 곧 북한과의 화해협력이란 안보를 희생시키면서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군사 전문가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전문가들과 함께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 진력함으로써 ‘국가안보보다 남북화해가 먼저인 정부’ 또는 ‘동맹보다 북한이 먼저인 정부’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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