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시는 자칭 노동존중특별시라고 한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 논란을 보면 노동비리특별시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서울시가 지하철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안전의 외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자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악용해 직원의 자녀나 인척에게 고용 특혜를 베풀었다. 일단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가 무기계약으로 바꾸고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한 다음 형식적인 시험으로 승진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노동 비리 뒤에는 노조가 있다. 아무런 연줄 없이 공채시험으로 입사한 직원들이 특혜 채용에 항의했지만 묵살당했다. 무소불위 노조의 힘 앞에서 노동의 정의도 사라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서울교통공사의 관리 부실과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무소불위에 원인이 있지만, 관리 부실과 무소불위의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 때문에 공사노조가 부당한 요구를 해도 거절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취임 이후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수용해왔다. 노동계가 대권의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에 잘 보이려는 박 시장의 태도는 서울시 공무원이나 산하기관장에게는 명시화되지는 않아도 시정 방침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의 정치적 야망이 시정을 흔들고 서울교통공사의 노사관계를 삐뚤어지게 만든 셈이다.

노동 비리는 서울교통공사만의 문제일까?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도 박 시장과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무소불위는 비리를 만들기 십상이다. 서울교통공사 노동 비리는 문 대통령이 노동계 요구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취임 일성으로 선언하면서 커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모두 힘 있는 단위노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라 비리를 막는 등의 자정 능력이 떨어진다. 반면, 경총이나 전경련 등 경영계가 적폐 세력처럼 몰리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는 기업인은 죄인 취급을 당하기 때문에 노조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기 어렵다. 게다가 노동계를 편드는 대통령의 행보 앞에서 장관들도 노동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은 노동이 정치를 흔드는 나라가 됐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은 노동계의 눈치를 보는 정도지만, 국회와 내각 등에는 노동계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인이 즐비하다. 이러다 보니 정책 무대가 노동계에 기울어 있어 노동계 요구대로 정책이 흘러가고 있다. 이처럼 노동정치가 전성기를 맞았지만, 소득 양극화와 근로 빈곤 문제는 커지고 노동 비리가 터지고 있다. 노동정치가 견제와 균형을 잃으면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의 노조를 대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경험한 필연적 결과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노동계 중심의 구(舊)노동정치가 아닌 노동의 미래를 밝히는 신(新)노동정치로 전환해 왔다. 신노동정치는 노조와의 편향적인 연대는 지양하는 대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과 경영인의 요구를 존중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 논란은 노동운동은 물론 노동정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논란의 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도 규명함으로써 노동계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자성(自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노동이 정치를 흔드는 나라가 아니라,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로 바꿔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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