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반짝 빛나는 스타는 많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는 스타는 많지 않다. 누구나 전성기를 지나면 기량이 시든다.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출신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7)는 독보적 존재다. 그에게 전성기란 ‘바로 오늘 이 순간’이라고 할 정도로 테너와 바리톤 음역을 오가며 오페라에 출연하고, 지휘자 및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밍고는 18세 때 멕시코시티 가극장에서 데뷔한 뒤 세계 무대에서 ‘카르멘’ ‘라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의 주역으로 출연해 ‘오페라계의 자이언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페라 공연만 4000회이고, 맡은 역도 150개가 넘는다. 지난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조르주 비제의 ‘진주 조개잡이’는 150번째 배역 작품으로 기록된다. 세기의 성악가로 불렸던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맡은 배역은 60개, 미 오페라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경우 55개라고 하니 도밍고가 얼마나 전무후무한 성악가인지 알 수 있다. 시판되는 오페라 DVD나 CD는 도밍고가 출연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대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밍고의 명성을 대중화시킨 음악회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전야제로 로마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세 테너 콘서트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한 음악회는 전 세계에 생중계돼 15억 명이 시청했다. 공연실황 음반도 1200만 장이 팔려나가 클래식 음반 베스트셀러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신예 테너 도밍고의 재능을 간파한 말년의 마리아 칼라스는 “너무 노래를 많이 부르면 능력이 일찍 소진된다”며 충분한 휴식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도밍고는 쉬지 않고 공연했고, 요즘에도 “내가 쉬면 녹이 슬 것(when I rest, I rust)”이라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도밍고는 50세가 되던 1991년 처음으로 방한, 소프라노 홍혜경, 바리톤 연광철 씨 등과 공연한 바 있는데, 오는 26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7번째 공연을 한다. 이번엔 소프라노 임영인 씨 등과 무대에 오른다. 2년 전 방한 때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내년 4월엔 성악가 데뷔 60주년 겸 뉴욕 오페라 무대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가 예정돼 있다 하니, 오페라계의 거성(巨星)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