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각국 정상들이 참가하는 국제 정상회의가 끝나면 기념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데 회의 때마다 이런저런 뒷얘기가 많다. 지난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촬영 시간을 놓쳐 정상 사진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원고를 고치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기념 촬영 시간이 계속 지연돼 기다리다 로비로 이동하려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때 단체 사진을 찍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세면장에 잠시 다녀온 사이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공중화장실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의장이 아닌 숙소 화장실을 갔다가 시간이 안 돼 찍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사정이야 다 있겠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단체 사진에 불참한 것은 ‘의전의 실패’라고밖에 볼 수 없다. 주최 측에 책임을 돌렸지만 실무진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자리엔 미리 가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지만 영어가 서툰 우리 대통령들이 꺼리는 측면도 없지 않다.

사실 단체 사진 촬영은 단순히 사진 이상의 국제정치적 의미도 있다. 자리 배치가 가장 눈길을 끈다. 보통 이런 국제 정상회의 때는 주최국 정상이 첫 줄 중앙에 선다. 그리고 양옆으로 차기 주최국과 전 주최국 정상이 선다. 그 옆으로는 강대국 정상들이 서는데 주최국이 특별히 배려하는 정상이 서기도 한다. 또 정상의 재임 기간도 반영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뒤 열린 2009년 4월 영국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두 번째 줄에 섰다. 201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G20 회의 때는 시리아 내전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자 주최 측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거리를 멀게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을 때 열린 2014년 오스트레일리아 G20 회의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앞줄 맨 끝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개인도 해외여행 때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하는데, 북한 비핵화의 중요 국면에 우리 대통령이 없는 정상 사진은 아쉽기만 하다. ‘국가 의전’의 나사가 빠진 것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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