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부쩍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물갈이’ 전권을 받고 영입된 전원책 변호사가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이라고 아는 체를 했지만, 이 둘은 같지 않다. 공화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실험했던 민주주의의 변질에 대한 반성에서 배태돼 고대 로마에서 싹튼 제도다. 공화정의 출현은 곧 중우(衆愚)정치(일종의 포퓰리즘)로 악마화한 민주정에 대한 보완재 같은 것이었다. 민주주의 작동 원리가 ‘다수의 지배’였다면 공화주의는 ‘국가와 인민의 공공선 수호’로 특징지어진다. 통치자의 독재도, 특정 세력의 독점도, 대중의 독선도 허용하지 않는 게 공화주의이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는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민 끝에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밝힌 이유다.

지금 한국 사회는 통치자와 소수 집단이 정치·경제적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는 과두(寡頭)정치를 경험 중이다. 과두정은 민주정의 적이자 공화정의 대척점에 있다. 청와대와 조직화한 민노총 등 상위 10%가 과두정의 중핵을 구성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현 정권은 10%를 위해 90%를 배제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공기관 채용비리·고용세습은 다수의 지지를 앞세운 민주주의의 타락을 확인한다. 이데올로기화한 소득주도성장론도 공공선 추구라는 공화정의 정신과는 반대를 향한다.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노동시간 전격 단축 등이 과두 권력 유지를 위한 핵심 정책들이다. 권력과 민노총이 진보 20년 집권, 혹은 50년 집권을 위한 전략적 연대를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10% 정권이 과거 보수 권력을 ‘1% 정권’이라 공격하는 건 ‘오십 걸음 도망한 이가 백 보 달아난 사람 비웃는’(以五十步笑百步) 것이다.

청와대가 사법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재판부 설립을 밀어붙이고 정부가 직접 가짜뉴스를 판별·응징하겠다고 나선 것도 민주공화국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사법과 언론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의 모습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말해주는 징표로 해석된다. 통치자의 편의를 위한 임의조직인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 역시 공화정의 위기를 일깨운다. 청와대가 비대해지는 것과 동시에 국정의 최고 정책 심의기관이자 의결기관인 국무회의가 무기력해진 것도, 여권이 국민과의 협치를 내세워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와의 협치를 등한시하는 것도 민주공화국 운용 원칙의 일탈이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공화정의 선구자들이 가장 고심했던 건 어떻게 하면 민주정의 폭민(暴民)화를 막을 수 있을지였다. 오랜 시행착오와 숙성을 통해 서로 다른 것들이 상호 승인·견제·경쟁·발전하는 민주공화국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졌다. 권력을 잡은 특정세력이 ‘나만이 진리요, 정의요, 도덕’이라고 여기는 한 민주공화국은 설 자리가 없다. 민생은 피폐해지는데 국민을 둘로 나누는 적폐 몰이만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빠진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의의 이름으로 사법 농단 의혹 사건을 단죄하고, 대통령이 실패한 소득주도성장을 진리라고 고집하는 한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헌법 제1조 1항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minski@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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