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청구서에 혐의 적시 안해

문건작성지시 직권남용만 적용
‘무리한 여론몰이 수사’비판 여론
고위법관들 잇따라 검찰 비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첫 구속수감자가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영장에는 이른바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 혐의가 정작 빠져 있는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이는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청와대와의 거래를 위해 재판을 일부러 장기 지연했다는 의혹인데 검찰이 주요하게 내세웠던 프레임 가운데 하나로, 국민 정서를 자극해 사법불신을 극에 달하게 했던 원인이었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임 전 차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서에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대법관들에 대해 강제징용 사건의 재판절차와 재판내용에 개입하거나 재판으로 거래했다”는 혐의가 범죄사실로 적시돼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 5명에게 강제징용 재판에 관한 내부 검토문건 10개를 작성하도록 위법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혐의(직권남용)만 적용됐다. 이는 부산 법조비리 재판·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관련 소송 등에서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등 재판개입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명시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케하고 이를 청와대와 재판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에 보고함으로써 재판에 개입한 것이라는 내용이 영장에 명시돼있다”면서 “관련 보고서를 작성·지시한 것만으로도 (대법원에 대한) 부당한 재판개입”이라고 반박했다.

강제징용 재판 고의지연 프레임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민 정서를 가장 크게 건드렸던 의혹이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얼토당토않은 검찰의 여론몰이로 사법부는 이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외면한 친일파이자 중대 범죄자가 돼버린 상태”라고 지적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강제징용 최종 선고에서 박빙 결론이 나올 경우 그만큼 복잡미묘한 사안이라 재판이 장기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는 방증이 될 것”이라면서 “이 경우 검찰의 무리한 언론 플레이 수사는 명분을 잃고 탄력이 꺾이게 될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한편, 검찰의 대대적인 사법부 수사 국면에서 현직 고위법관들의 자기반성과 검찰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은 전날 법원 내부망에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검찰의 밤샘조사에 따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준 법원이 밤샘조사 관행을 묵인해준 꼴”이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강 판사는 해당 글로 인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SNS상에서 비판을 당한 바 있는데, 안철상 법원행정처 처장은 전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조 수석의 행태에 대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김리안·이정우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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