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발생 뉴스가 전해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서울에 거주하는 60대 A 씨가 메르스 환자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A 씨는 8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업무차 쿠웨이트 출장을 다녀온 길이었다.
입국 후 발열과 가래 등의 증상을 보여 즉시 서울대병원에 입원, 격리치료를 받았다. 전염성이 강한 메르스의 특성상, A 씨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 전 삼성서울병원을 경유했다는 사실도 공개됐고, 삼성서울병원은 A 씨와 접촉한 사람들을 격리 조치했다. 정확한 확진 판정과 신속한 격리, 올바른 정보 때문이었을까. 3년 전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는 더는 퍼지지 않았다.
김탁환 작가(오른쪽 사진)의 새 소설에선 이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2015년 5월 20일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해 전국을 강타한 그 모습 그대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메르스는 강한 전염력과 높은 치사율 때문에 일파만파 퍼졌다. 환자들이 패닉에 빠지고, 병원과 당국이 우왕좌왕하면서 혼돈을 더 키웠다. 거리에 인파가 사라졌고, 경제는 다운됐다. 같은 해 12월 23일 ‘상황 종료’가 선언될 때까지 186명이 감염되고 그중 38명이 사망했다. 격리됐다 해제된 사람은 1만6700명이 넘었다.
김 작가는 메르스 사태 당시 확진 판정 순서에 따라 번호로만 불렸던 환자와 그 가족을 불러내 그들의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들은 왜 메르스에 걸렸고, 얼마나 처절하게 투병했으며,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있는 인물은 셋이다. 암의 일종인 림프종을 극복한 치과의사 김석주와 출판물 종합유통업체 책탑의 부장 길동화, 그리고 방송사의 사회부 수습기자 이첫꽃송이. 세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이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엄마이고 딸이다.
그러나 우연히 2015년 5월 27일 F종합병원 응급실에 들르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운명에 처한다. F종합병원은 정부 당국이 쉬쉬했던 첫 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가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감염돼 힘겨운 투병에 들어간다. 왜 감염이 됐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명확한 건 없다. 모든 게 감염병 관리에 대한 모호한 기준, 병원 실명 미공개 등 지나친 정보보호, 정부의 미진하고 안이한 대응 탓이다.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두고 의사이자 동시에 환자인 김석주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병원의) 국제적 명성? 웃기지 말라 그래. 연구는 잘하는지 몰라도 격리의 ABC도 못 갖췄잖아. 방심해선 안 돼. 병원이 한심하게 굴면 환자나 보호자라도 나서서 지적해야지.” 허술하고 무책임했던 당시의 무능을 질타하는 김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하지만 감염과 투병 상황 못지않게 황당하고 고통스러운 게 완치 이후의 삶이다. 셋 중 길동화와 이첫꽃송이는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 해제되지만 폐가 망가져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더구나 길동화는 메르스 환자를 꺼리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직장까지 잃는다. 가장 오래 투병하는 김석주의 사정은 이보다 더 답답하고 암울하다.
사건은 마치 일지처럼 순서대로 펼쳐진다. 5월 20일 첫 확진 환자 발생, 6월 4일 서울시의 정보 공개 요청 기자회견, 7월 2일 메르스 완치자 100명 돌파, 7월 6일 방역 당국의 메르스 사실상 종식 선언, 그리고 10월 마지막 환자의 음성 판정과 재입원 등 우리가 이미 겪어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다를 수 있는 건 바로 작가의 시선에 있다. 메르스 뉴스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이 아닌, 감염자이자 피해자로서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한다는 점이다.
2014년 대형 해난 사고를 다룬 ‘거짓말이다’에 이은 두 번째 사회파 소설이다. 김 작가는 메르스 사태 이후 관련 자료를 찾고, 완치자나 유족을 취재해 피해자의 서사를 완성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運)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라고 적었다. 640쪽, 1만75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