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지방시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왼쪽)과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이미지를 가져온 생로랑 드레스. 브랜드는 욕망의 메시지다.  민음사 제공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지방시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왼쪽)과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이미지를 가져온 생로랑 드레스. 브랜드는 욕망의 메시지다. 민음사 제공

- 브랜드 인문학 / 김동훈 지음 / 민음사

브랜드 어원은 신분 상징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줘

지방시·디즈니·프라다 등
32개 유명브랜드 이면 추적
왜 끌리는지 인문학적 고찰
“소비 앞서 ‘나다움’ 찾아야”


지금은 뜸하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행태에 대한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세요.” 어디 중국인들뿐일까.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나갔다 오면 으레 명품 브랜드를 양껏 사 들고 온다. 고가의 브랜드를 걸치고 둘러야 인정받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그렇게 높아지는 브랜드에 대한 애착의 근원을 알 수 있는 책이 한 권 출간됐다. 인문학자 김동훈의 ‘브랜드 인문학’이다.

브랜드(brand)의 어원은 그리스어 스티그마(stigma)인데, 칼끝으로 긋거나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 점, 표시’ 등을 말한다. 이는 곧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노예는 속해 있는 주인집의 문양이, 신전 사제라면 자신이 신에 속해 있음을, 군대 신병은 자신의 손에 문신을 새겨 군인임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브랜드의 원형은 한마디로 ‘메시지’인 셈이다. 욕망은 메시지의 확장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브랜드’를 통해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은 동서고금 모든 인간의 의지였다. 저자는 그 인간의 의지를 32개의 브랜드를 통해 ‘정체성, 감각과 욕망, 주체성, 시간성, 매체성, 일상성’의 키워드로 분석한다.

브랜드와 정체성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브랜드 중 하나는 ‘지방시’다. 패션 브랜드 지방시의 정체성은 ‘고딕 스타일’이다. 그러나 고딕풍을 유지할 뿐 지방시는 꾸준히 현대적인 것과 접목을 시도한다. “질감이나 광택이 다르거나 이질적인 소재를 독특하게 조합”함으로써 일탈을 꿈꾸는데, 생각해 보면 고딕은 시작 자체가 이질적이었다. 4∼5세기 로마에 들이닥친 고트족은 “낯설다 못해 야만적”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삶의 풍을 ‘고트족의’라는 뜻의 고딕(Gothic)이라 불렀다. 저자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면서 고딕풍이라는 지방시의 정체성과 이질성의 결합을 통해 지방시가 끊임없이 정체성을 갱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감각과 욕망을 드러내는 대표 주자는 ‘스타벅스’다. 운동화가 아니라 나이키를 신 듯, 우리는 커피가 아니라 스타벅스를 마신다. 흥미로운 대목은 스타벅스의 로고에서 드러난 감각과 욕망을 끌어낸 것인데, 모두 알다시피 로고는 희랍 신화의 세이렌이다. 세이렌은 뱃사공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로 “자, 이리 와요 … 우리 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봐요”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자신을 묶어 귀향에 성공한다. 반면 ‘모비딕’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귀향하지 못한다. 이처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이름과 로고 사이에 절묘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감각과 욕망을 표출하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설명한다. “경계를 아슬아슬 유영하되 경계 너머로 가지 말 것. 설령 넘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을 잊지 말 것.” 스타벅스는 커피 한 잔으로 경계 너머의 유혹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세계에 팔고 있는 셈이다.

브랜드의 시간성을 확장하는 것은 ‘디즈니’다. 애니메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아니마(anima)’로 ‘살아 있는 기운’을 의미한다. 그 기운은 지금 세계를 발아래 두고 있는데 “정지된 그림에 운동성을 결합”해 “실사영화보다 더 자유롭게 이미지를 이루는 요소들을 변형”시켰다. 저자는 그렇게 변형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우리 삶이 개성적이고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나가도록 부추긴다”고 강조한다. 누구나의 삶이 “개성적이고 환상적”일 수는 없지만, 애니메이션이 어린이 전유물을 넘어 남녀노소가 즐긴다는 점에서 디즈니는 시간성을 획득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일상성의 키워드로 설명한 브랜드 중 하나는 ‘크리스챤디올’이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인들의 삶은 피폐했다. 특히 여성은 자신들의 가치를 드러낼 수 없었다. 이때 디오르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만 한다면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개혁은 찾아온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스 여성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물론 그 욕망은 과하지 않았다. 크리스챤디올은 “상실의 보상으로서의 브랜드가 아닌, 상실된 그 무엇을 열망하도록 하는 브랜드” 즉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인간 본래의 가치를 찾도록 유도했다. “크리스챤디올은 대공황과 전쟁으로 상실된 여성의 자연스러움을 찾도록 했다.”

이들 외에도 프라다, 발렌시아가, 베르사체, 베네통, 랑방, 스와로브스키, 루이비통 등 이름만으로도 소유욕을 자극하는 브랜드들의 이면이 흥미롭다. 저자는 강조한다.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찾자고, ‘나다움’을 발견하자고. 더불어 그것을 욕망하는 기저를 알면 창의성마저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브랜드의 이면에 담긴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은 신선하다. 다만, 소개한 브랜드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장삼이사들이 즐거이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언제고 우리 앞에 올 것인가, 하는 마음이 사족처럼 떠오른다. 488쪽, 1만8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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