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실 권력구도 ‘요동’
궁중쿠데타 일으켜 실권 장악후
사회개혁·신산업 육성 등 추진
카슈끄지 살해 배후 지목된뒤
글로벌기업 투자 유치 ‘빨간불’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도 멀어져
지난달 美서 급거 귀국하는 등
주미대사 동생 칼리드‘급부상’
80세 국왕 후계구도 변화줄수도
지난해 궁중 쿠데타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33) 왕세자는 젊은 나이는 물론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내용의 ‘비전 2030’을 발표하는 등 보수적인 사우디 왕실과 차별화된 파격적인 정책으로 그동안 서방세계로부터 ‘개혁 군주’로 불렸다. 하지만 왕세자 자리에 오른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그가 반정부 성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사우디 왕실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추락은 사우디의 정치·경제 개혁 전반과 직결돼 있어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왕실 내부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궁중 쿠데타를 일으키며 하루 만에 왕세자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사우디 왕실에서 또 한 번의 권력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흔들리는 빈 살만 왕세자의 입지 = 2일 로이터통신 및 현지 언론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의 실권을 장악한 이후 여성에 대한 운전 허용 등 사회개혁과 함께 석유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경제개혁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번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후폭풍으로 재원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10월 23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를 통해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주요국 인사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도 대부분 불참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 왕족과 기업인 320여 명을 호텔에 감금하고 재산을 몰수하면서까지 경제개혁을 위한 재원 확보에 나섰던 빈 살만 왕세자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은 커다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해온 경제개혁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할 경우 평소 그의 지나치게 발 빠른 행보에 반감을 보였던 왕실 내 보수파의 견제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산업을 중시하는 기득권층과 여성인권 해방에 보수적인 종교계 등의 반발이 특히 거세질 전망이다. 재산을 강탈당했던 왕족들 또한 큰 불안 요소다.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적 행보에 지지를 보냈던 사우디 국민 또한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계기로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관망으로 돌아설 수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궁중 쿠데타 과정에서 당시 34명의 왕실충성위원회 위원 중 31명의 지지를 확보한 바 있지만 이들은 국왕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 특히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입장이 점차 강경해지고 있어 그의 기반이 계속 유지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불확실성 커지는 사우디 왕실 = 최근 미 언론들은 빈 살만 왕세자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빗대 비판하기까지 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10월 29일 ‘무함마드 빈 살만은 또 다른 사담 후세인이다’라는 제하의 특집기사를 통해 “후세인처럼 젊은 나이에 권력 최상층에 오른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의 전폭적 지지와 묵인 속에서 예멘 내전 개입, 카타르와 단교, 캐나다와 외교 마찰 등 무모하고 모험주의적 결정을 거리낌없이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왕실 중 가장 폐쇄적이고 베일에 싸인 사우디 왕실은 왕자 수만 7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복잡한 가계도를 이루고 있는 데다 왕실 내부 움직임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가 급부상하는 과정에서 국왕 승계 원칙이 기존 형제 계승에서 부자 계승으로 바뀐 이후 권력 다툼이 표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가장 극적 움직임은 지난해 6월 빈 살만 왕세자가 당시 왕세자였던 사촌형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감금한 후 왕세자 자리를 빼앗은 일이다.
이후 빈 살만 왕세자는 1년 만에 사우디 왕실 권력을 손에 쥐며 정점에 올라섰지만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직간접 배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급속도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80세가 넘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후계 구도를 갑자기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중동 전문가 사이에서는 빈 살만 왕세자를 대신해 동생인 칼리드 빈 살만 왕자가 새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주미 사우디대사를 맡고 있는 칼리드 왕자가 10월 중순 본국으로 돌아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계 구도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 정보기관의 수장을 맡기도 했던 칼리드 왕자는 사우디 왕실 내 대표적 친미파로 분류돼 후계 구도에 급격한 변화가 일더라도 미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다양한 가능성 속에 최근 칼리드 왕자가 부상하고 있다”며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여파에 따라 뜻하지 않게 왕실 후계 구도가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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