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가져갈 회사 늘었다”
제작자들 환영 분위기 이지만
함량미달 영화 쏟아질 우려도


영화투자배급사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기존 ‘빅4’에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화이브라더스의 자본으로 설립된 메리크리스마스가 가세했고, 화장품 업체 AHC의 창업주인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이 투자한 에이스메이커도 문을 열었다. 여기에 도자기 업체 행남자기가 돈을 댄 행남사(가칭)도 작품을 준비 중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제작자는 “아무래도 시나리오를 들고 들어갈 회사가 많아지면 영화를 제작 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투자배급사가 많다고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당장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투자배급사들은 올해 여름 시장과 추석시즌에 예년보다 저조한 흥행성적을 낸 후 투자 편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기존 투자배급사에서 새 투자배급사로 인력이 재편돼 자리를 잡기까지 한동안 투자 결정이 활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가 메리크리스마스 대표가 됐고, 정현주 전 쇼박스 투자제작본부장도 에이스메이커 대표로 가며 쇼박스에서 10여 명의 직원이 빠져나갔다. 또 CJ ENM도 영화투자 결정라인 임직원 대부분이 나간 상태다. 이밖에 행남사는 윤종빈 감독의 제작사 월광과 한재덕 대표의 사나이픽쳐스가 한살림을 차린 회사다.

영화계에서는 현 상황이 기회로 작용할지 위기가 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2006년 같은 위기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가 산업화 되며 영화판으로 돈이 몰렸다. 제작 편수가 급증하며 한국영화 관객 수도 늘자 함량 미달의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소재 고갈과 출연료 상승 등 구조적인 문제가 불거졌고, 투자자들은 영화판을 떠났다.

새로 문을 연 투자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공멸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2006년 자본 과잉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며 “그때는 돈이 몰려 무차별적 투자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투자환경이 그때보다 발전했다. 여러 투자배급사가 시장에 진입하며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는 상황이지만 경쟁구도가 심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투자배급사별로 선명한 색깔을 내보이며 폭넓은 투자가 이뤄지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타업종에서 유입된 자본은 기다려주지 않을 듯하다. 지금도 흥행코드에 맞춘 영화가 공장에서 벽돌 찍어내듯 나오는 판국에 더욱 치열해진 경쟁 상황에서 진득하게 좋은 작품을 고를 여유가 생길지 의문이다. 호기(好機)를 한국영화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지혜가 필요한 때다.

대중문화팀장·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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